만난 사람 = 유수연 부국장
“나에게 시련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푸대접 풍조속에서 당대 최고 남성모델로
“욱하는 마음에 패션이벤트 대행사 설립해
한국대표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육성”
폐암수술·고소고발 연루 등 최대 고비
4月 유엔빌리지로 이전…사업 재기 선포
원주에서 태어나 해병대 근무까지 마친 건장한 사내가 하늘이 주신 신체조건 덕분에 국내 몇안되는 남성 모델의 길을 걸어왔다.
패션에 대해 ‘패’자도 모르는 시대에 멀쩡한 남자가 모델을 하다니. ‘양아치’ ‘날라리’라는 오만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그는 모델이라는 천직을 성공적 직업으로 만들어 갔다.
그가 모델이 된 건 우연이었다.
1970년대 해병대 복무중 휴가를 얻어 서울에 왔다가 당시 물 좋기로 이름난 꽃다방에서 지배인 노릇을 잠시 했었는데 서라벌예대 사진학과 학생이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 자신을 모델로 찍은 사진을 출품한 것.
일이 될라고 그랬는지, 그 사진은 수상을 하게 됐고 그곳에 모인 많은 기자들이 이 회장을 보고 진짜 모델이 돼보라고 권한 것이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당시 사진을 찍었던 이재길 학생은 현재 계명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늘 후배 모델들에게 미안하단다.
패션모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 가격을 싸게 해야 일감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는 판단에 스스로 자신의 몸값을 낮게 책정했던 것이 사례로 작용할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실책이 아니었나 후회할 정도라고.
동료모델 3명과 함께 79년 처음으로 사무실을 구하고 88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당시 도신우(현 모델센터 회장) 김진(영화배우 김진규의 아들) 김석기 등 당시 얼마 안되는 남성모델들도 뜻을 함께했다.
그가 사무실을 차린 것은 전적으로 모델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푸대접’ 때문이었고, 그래선지 그는 이후 줄곧 모델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투쟁(?)해 왔다.
“1979년 부산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배우와 가수들은 칙사 대접을 하면서 모델들은 싸구려 여관방에 재우는 등 완전히 찬밥 취급을 하더라구요. 가뜩이나 기분이 나빴는데 누군가 우릴 보면서 ‘사내 자식들이…’ 어쩌고 하길래 그 자리에서 한 판 붙었거들랑요”(이럴때 그의 표정은 생생한 고등학생 같다)
‘욱’하는 마음에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삼성물산 맥그리거 남성복 전속모델 계약금으로 받은 돈을 털어 백색전화 한대 들여놓고 후암동에 사무실을 차렸다.
막상 사무실은 차렸지만 일감은 별로 없었다. 이때 등장한 도우미가 미국 중앙정보부(CIA) 극동지부 요원으로 파견나와 있던 모 선배.
그가 한양주택 배종렬 회장을 소개해주었고, 배 회장은 건축과는 아무 관계없는 그에게 압구정동 한양쇼핑센터(지금의 갤러리아 자리) 실내공사 등 일거리를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이후부터 아무 관계없이 도와주고 아무 관계없이 도움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형편이 조금씩 피면서 1983년 한남동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이름도 모델라인으로 고치고 본격적으로 패션행사 대행업을 전개했다. 모델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도 차렸다. 초창기 패션계의 상징이던 국제복장학원의 차밍스쿨을 제외하면 독립적인 모델학교로는 제1호인 셈이다.
각종 패션행사를 치르며 자리를 잡아가던 그는 1989년 일본에서 도쿄(東京)컬렉션을 접하게 된다. 당시 디자이너들의 반응은 센세이셔널했다. 곧바로 서울패션아티스트협회(SFAA)의 탄생했고 그는 1990년 11월 힐튼호텔에서 제1회 SFAA 컬렉션의 산파역할을 했다.
몇년후 뉴 웨이브 인 서울(New Wave In Seoul)와 그린&글로벌(Green and Global) 컬렉션의 탄생을 주도했다.
항상 앞장서서 무작정 뭔가를 벌리고 보는 그에게는 언제나 그를 전폭적으로 이끌어주는 사람과 시샘하는 사람 두부류로 뚜렷히 갈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항상 목소리를 높였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패션업계의 ‘의리의 돌쇠’로 통했다.
그런 그가 요즘 평생을 쌓아왔던 모든 것이 걸린 인생 최대의 시험을 받고 있다.
평생을 모델 양성과 패션무대에 바쳤던 이 회장이 얼마전 애지중지 키워온 모델라인을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시키겠다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