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내셨으면….]
<뭐라카노, 회장 사표를 누가 수리할낀데.>
몇 년쯤 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룹은 점점 더 세월의 무게만큼 힘들어 집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썩어 들어 가는지 모르지만 구제불능 사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회장님은 낙관하고 계십니다.
좥다문 얼마라도 받고 파십시오. 그리고 편안하게 사십시오.」
<쓸데없는 소리, 문제없다 카이.>
눈도 귀도 다 닫힌 상태를 본인만 모를 뿐입니다.
다시 몇 년이 더 지나고 「부도」가 코앞에 닿아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거, 좀 알아봐라. 쪼매이만 주고 그룹 통째로 가져가라 캐라.>
그룹은 떠내려 가고 코웃음, 비아냥거림만 남았을 뿐입니다.
손가락질 받는 신세가 되고서야 후회한들 무엇하겠습니까.
돈·명예등은 있을때를 생각하면 없을때의 상황은 비참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돈·명예보다 더한 것은 건강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는 자신의 잘못이 가장 큰 법입니다. 그런데도 못나고 야비한 사람들 일수록 자신은 잘못함이 없다고 합니다. 모든 잘못은 오로지 남탓일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자신만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런사람의 주변에는 충성심을 내세운 무능력자들이 우글거립니다. 목청만 높습니다.
가래끓는 소리로 목에 힘만 주었지 회사에 도움되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합니다.
아이디어는커녕 고자질, 이간질이나 일삼습니다. 심지어는 하지도 않은 얘기를 지어서 보태 말합니다.
유능한 사람 모함을 거품물고 하기 일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의 무능함을 얼버무리고 회장님의 여린 귀를 자극, 비난과 비방에 익숙한 성질을 잘 건드려 놓습니다.
그래서 있어야 할 사람은 나갑니다. 궁극적으로는 없어도 될 사람만 들끓게 됩니다.
의리의 돌쇠를 가장한 맹꽁이 같은 사람이 비자금 비리라도 틀어쥐고 있어서는 회사는 절단입니다. 회사의 암적인 존재가 돼도 자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의 속담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조(李朝)시대를 돌이켜보면 「전하」를 부르짖으면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치는 무능한 「지당대신」들에 둘러쌓인 군주가 온전하지 못했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허덕여야 했습니다.
군주가 현명했더라면 술수나 간계에 놀아날일도 없었을 겝니다.
감언이설로 속삭이는데 넘어 갈리도 만무했고요.
간신배를 경계하고 말을지어 모함하는 자를 오히려 벌 주었을 겝니다.
눈을뜨고서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옳은 말과 그른 말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눈과 귀는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상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조광조가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위작(僞作)에 희생된 것도 못난자들의 간교함에 넘어간 임금님의 어리석음 때문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왜 그렇게 똑똑하고 바르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못 넘어뜨려 안달했을까요?
하기야 어느시대, 어떤사회, 조직에도 그런현상은 있게 마련인 까닭은 세상살이란게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인지. 모를일입니다.
좀더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진정 잘돼는 길이 어떤것인지 지혜롭게 생각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야 세상은 전쟁도 없어지고 살맛나는 곳 쯤으로 되지 않겠습니까?
황우석 교수의 또하나의 노벨상이 날라가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