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의 산업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 BYC(대표 한석범)는 ‘앞서 가는 기업’이란 이념을 바탕으로 5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국민내의’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BYC는 1946년 창업한 이래 58년간 불모지에 지나지 않았던 국내 내의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으며 오직 의류생산에만 전념함으로써 풍부한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성장의 성장을 거듭해왔다.
내수뿐 아니라 수출부문도 일찌감치 강화하면서 현재 70여개국에 자체브랜드 ‘BYC’를 수출하고 있는 알짜기업이다.
1946년 한흥메리야스 공장설립, 1957년 백양 상표를 등록하면서 메리야스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이 회사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백양(白羊)’이란 브랜드로 익숙하다.
BYC는 국내최초로 아염산 소다에 의한 최신 표백기술을 개발했으며 이를 계기로 순백색의 이미지가 강한 ‘백양’을 상표로 출원 등록하게 됐다는 배경이다.
1963년 일본의 미쓰비시社는 한국 메리야스 시장에서 샘플을 수거해 비교·분석해본 결과, 한흥(현 BYC)의 제품이 가장 우수하니 일본에 수출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나 처음에는 품질면에서 자신이 없다고 거절, 이후 품질관리에 자신감을 얻은 후 수출량을 늘려가기 시작했다는 것.
초창기 1만 5천달러로 시작한 수출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970년대 100만달러, 1973년 700만달러, 1976년 무역의 날에는 1,000만달러를 수출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1년 후인 1987년에는 7,300만달러를 수출, 5,000만달러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1991년 최우수 중견기업상 수상(한국능률협회), 1993년 한국상표의 국제화 성공전략 대표기업 선정(한국 무역협회) 등 각종 권위있는 상을 수상하면서 브랜드 밸류를 쌓아왔으며 1995년엔 중국 상해에 BYC방직품유한공사를 설립했고 같은해 세계화추진 수범기업 사례(통상산업부)에 선정됐다.
BYC로 상호를 변경한 것은 1996년. 이후 세계 속의 ‘BYC’를 선전하는데 주력하면서 70여개국 해외시장서도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중동, 아프리카, 일본, 미국지역에는 OEM방식을 탈피, 자사 브랜드인 ‘BYC’로 수출하고 있으며 1993년 완공한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는 일본, 동남아, 중동을 비롯 중국 현지 내수를 겨냥한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제품과 가격면에서 모두 인기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BYC측은 성공요인에 대해 업종 전문화, 사업부별 독립 채산제, 합리적인 유통관리, 건실한 재무구조, 과감한 투자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선도, 세계적인 상표 ‘BYC’ 육성 등을 꼽는다.
‘메리야스로 세계 1등 기업을 만들겠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외길을 걸어온 것이 경쟁력을 키워오는데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또 연구개발비 투자를 단행하면서 93년 BYC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각종 소재 및 염색 방법 개발을 위해 년 3억원의 비용을 들이고 있다.
현재 17명의 연구 인력이 천연소재를 이용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및 효과적인 염색 방법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또 95년 설립한 BYC 디자인 연구소는 나염패턴 및 원단개발, 원단용 신조직 개발 등을 주력하면서 56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BYC는 현재 신세대 감각파들을 위한 패션내의 ‘스콜피오’, 여성 화운데이션 란제리 ‘아미에’, 여름용 인기품목인 ‘모시메리’, 특수 삼중직으로 가볍고 따뜻한 ‘에어메리’, 땀냄새를 없애주는 ‘데오니아’, 흡수속건 내의 ‘에어로쉬’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캐주얼웨어 및 양말, 타올, 지갑, 벨트 등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BYC는 21세기 의류종합회사로서의 도약을 실행에 옮기고 있으며 세계 최강의 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백양’에서 ‘BYC’로…세계적 내의 기업 발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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