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계를 사용해 섬유를 1차원 형태인 실로 만들고 그렇게 만든 실로 2차원 원단을 만들어 최종적으로 3차원 형태인 의류를 제조하지만 자연과 생태계는 기계 없이도 수억 년 전부터 원단제조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것이 누에고치이다. 누에는 자신의 피브로인+세리신 단백질을 기반으로 섬유를 뽑아 이를 2차원평면 원단으로 만든 다음 최종적으로 주거할 3차원 공간을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어떤 기계장치나 화학 첨가물도 필요 없다. 아직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고도의 첨단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 가죽도 원단이다. 정확하게는 단백질 섬유로 만든 부직포 원단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피부는 콜라겐 섬유가 주성분인 단백질 기반 부직포 원단이다.
식물의 잎도 포도당의 중합물인 셀룰로오스 섬유 기반인 원단이다. 사람의 피부가 표피, 진피, 피하지방의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잎도 표피, 해면조직, 울타리조직으로 만들어진다.
홍차 원단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균으로도 원단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콤부차(Kombucha)다. 홍차균으로 알려진 콤부차에 있는 초산 박테리아(AAB)는 설탕을 기반으로 셀룰로오스 섬유를 만든다. 포도당으로 셀룰로오스 섬유를 만드는 면과 똑같다. AAB가 만든 셀룰로오스 섬유를 가죽처럼 부직포 원단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른바 바이오 셀룰로오스가 된다.
홍차로 만든 의류
또 얼굴 미용에 사용하는 마스크 팩도 ‘아세토박테리아 자일리너스’균이 만든 셀룰로오스 부직포이다. 박테리아가 만든 셀룰로오스는 면과 정확하게 같은 성분이지만 굵기가 면보다 100배나 가늘어 ‘초극세사 면’이라고 할 만하다. 면보다 섬유장이 더 길 뿐만 아니라 더 질기기까지 하다.
‘바이오셀룰로오스’ 일명 ‘바이오셀’은 초미세 네트워크로 저절로 부직포를 형성하면서 성장한다. 면보다 마이크로피브릴(Microfibril)이 훨씬 더 작고 다공성이어서 흡습력이 탁월하다. 식물 셀룰로오스의 수분 유지율은 최대 60% 이지만 바이오셀은 무려 1000% 로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분율은 마이크로피브릴의 어마어마하게 큰 표면적과 초미세 네트워크의 가느다란 틈이 만든 강력한 모세관력(Capillary Force)때문이다.
버섯가죽
동물이 만든 원단은 재료가 단백질 섬유인데 비해 식물이 만든 원단은 다당류인 셀룰로오스 기반이다. 자연에서 동물도 식물도 아닌 생물이 바로 박테리아 즉, 균류이다. 균류는 동물과 식물의 기초가 되는 가장 흔한 재료인 단백질과 셀룰로오스 둘 다를 사용함은 물론 추가로 갑각류 곤충의 외피로 주로 사용되는 키틴(Chitin)까지 동원한다.
키틴은 자연에 셀룰로오스 다음으로 흔한 다당류이다. 고도로 복잡하지만 환상적인 자연 원단을 만드는 이 멋진 균류가 바로 버섯이다. 버섯이 만든 원단은 가죽과 매우 흡사하다. 동물 가죽은 단백질 단일소재 이지만 버섯 가죽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그리고 키틴질로 만들어진 복합소재이다. 동물과 식물, 곤충이 가진 재료를 융합한 초고도 하이 테크닉으로 열등한 인간 기술이 미래에 이룩해야 할 첨단소재라고 할만하다.
기술의 한계로 인하여 우리는 소재를 섬유로, 섬유를 실로, 실을 원단으로 만드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자연은 소재를 단번에 원단으로 만드는 최첨단기술을 갖고 있다. 공통점은 결과물이 부직포라는 것이다. 미래 원단은 부직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