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 높은 여성화 위주 성수동 생산기반 무너질 위기
성수동에서 경기도 성남, 해외로 생산공장 이전 움직임
35명이 근무하는 미소페 협력공장 슈메이저 김기술(가명) 대표는 약 한달 전인 작년 12월말 공장 문을 닫았다. 지난해 기술자 공임이 전년대비 약 25% 오르면서 원청인 수제화 브랜드 미소페 오더 물량이 급격히 줄어 심각한 경영난이 닥쳤기 때문이다.
미소페는 작년 공임이 크게 오르자 이를 원가에 반영, 일부 제품에 소비자 가격을 인상했는데 판매가 부진했던 것이다. 이 공장은 월 평균 5000족을 생산하는데 9개월 만에 생산량이 1/3 이상 줄었다. 김 대표는 2년 6개월간 운영하던 공장 문을 닫고 앞으로는 중국 공장에 샘플을 의뢰해 미소페에 납품하던 합피신발을 수입·공급할 계획이다.
김기술 대표는 “성수동 공장 대부분이 제일평화 등 동대문 시장과 인터넷 업체 같은 거래처가 있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일감이 줄어드는 추세다. 여기에 공임이 인상되고 오더가 줄면서 공장이 고사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익이 다소 줄어도 일감만 있었으면 공장을 돌렸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노동집약 업종인 수제화 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작년 급격한 제화업계 기술자 공임 인상이 성수동 일대 제화생산 공장의 줄 폐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4월 탠디에서 시작된 공임 인상 시위로 제조 원가가 오르고 주변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생산 물량이 축소되는 연쇄파급 효과를 낳았다. 임가공 업체의 1인 소사장인 기술공들의 퇴직금 요구 소송은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태여서 상황은 더욱 혼미한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2~3개 브랜드와 동대문에 수제화를 납품하는 성수동 B업체는 작년 3명의 공장직원을 보내고 대표가 직접공장장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탠디와 미소페 등 원청이 공임을 인상하면서 이곳도 갑피, 저부, 직원들 공임을 1500원씩 올려줬다. 그러나 앞으로 공임이 더 올라 생산량이 줄어들면 공장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이 회사 대표는 “두 달 전 맞은편의 수제화 공장도 문을 닫았다. 많은 성수동 공장이 비슷한 현실에 놓여있다”며 “급격한 공임 인상 영향으로 경기도 성남, 광주를 비롯해 중국 생산을 늘리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C공장은 비수기인 요즘 한달 중 열흘만 공장을 돌리고 있다. 평균 가동률이 50%를 밑돌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상반기 중 성수동 일대 제화공장에 줄 도산이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공임 인상으로) 원가 비용이 높아지면 판매가격도 함께 올라야 한다. 그러나 경기 위축으로 인해 소비자가격은 쉽게 올리지 못한다”며 “원가는 가죽, 굽, 창 재료비와 공임 등으로 매겨지는 데 작년에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오르면서 원가 비용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큰 폭의 공임 인상이 너무 단시간 내 급격히 이뤄졌다는 데 있다. 슈메이저 김기술 대표는 “몇 차례 민주노총 제화지부와 논의할 때 10년간 못 올린 공임을 한꺼번에 올려 받기보다는 우선 물가상승률 보다 높은 5%대 선으로 인상하고 다음해 또 5%를 올리는 등 차등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변화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들 공장주들은 “1년 간 25%나 오른 공임이 원가에 반영되면 기업들 순이익은 거의 제로(0) 수준이 된다”며 “자연히 일감이 줄어 생산 공장은 문을 닫게 된다”고 말했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울 구두류 제조업은 534개에 이른다. 이중 70%가 수제화 핵심기반인 성수동에 몰려 있다. 비교적 부가가치가 높은 여성화 경쟁력의 핵심 기반이 되는 곳이다. 성수동 제화 생산 기반이 흔들릴 경우 경쟁력 있는 수제화 생산 기술이 사장되고 지역 산업까지 몰락할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자 수제화 생산물량은 점차적으로 경기도 성남과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소비자 주문 맞춤 생산이 많은 성수동의 수제화 생산 원가는 4~5만원 선이다. 토라(toe lasting, 토우를 싸는 기계) 작업이 많은 성남지역은 성수동보다 1만원 낮은 3~4만원대를 이루고 있다. 주로 기성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기계 작업이 많아 성수동보다 생산성이 3~4배 높다. 여기서도 원가를 맞추지 못하는 곳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베트남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이들 지역 생산 원가는 2~3만원대에 형성돼 있어 많은 업체들이 해외생산 유혹을 버텨내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불씨는 남아 있다. 공장을 상대로 한 제화기술공의 퇴직금 소송은 또 다른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성수동에만 약 35개 업체가 퇴직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울성동제화협회 박동희 회장은 “제화공들은 1인 소사장으로 근무했지만 사업주를 상대로 한 퇴직금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며 “1월 중 결과가 나올 업체가 있다. 소송에 진 공장은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 1~2년 뒤 항소까지 가면 폐업하는 공장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