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번품만 있는 국내 섬유산업 “이대론 안 된다”
정번품만 있는 국내 섬유산업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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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에 걸맞는 고유영역 개척 ‘발등의 불’
수출 감소→단가 추락→채산성 악화
내수침체에 자금난까지 ‘고사위기’

대구경북 섬유기업들이 봄 성수기였던 지난 3~4월 중 체감지수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 항목들이다. 수출이 비교적 원만한 행보를 보인 듯 93.6의 체감지수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껍데기만 남은 장사였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채산성이 80인데 체감지표가 93.6을 보였다는 얘기다.

일부 덤핑에 근접한 가격으로 창고를 비웠다든지 후발국에서 수입한 생지를 들여와 산지에서 염색해 다시 저가로 수출했다는 얘기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봄 시즌 사상 유례없이 후발국에서 들여온 폴리에스터 강연감량직물과 ITY 싱글스판니트가 크게 증가했다는 게 대구염색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국내 섬유 및 의류산업 무역동향(한국무역협회)에서도 직물류 수입이 18억6600만 불에 달해 2005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동률과 자금사정, 채산성 역시 향후 더욱 어려울 것으로 지역 업계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제품류까지 포함할 경우, 수입 규모는 104억 7700만 달러로 지난 2010년(57억9400만불) 대비 80.8 % 폭증했다. 직물류 수입도 2005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2005년 대비 27% 증가했다. 이와 같이 최대 봄 성수기가 도래했는데도 국내섬유산업이 전례 없는 어려운 행보로 돌아선 것에 대한 업계의 분석은 이구동성이었다.

“큰 일 났다. 앞으로 어떻게 기업을 유지할지 모르겠다.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대구경북에 이어 전국 직물류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다. 섬유원료, 섬유사를 비롯해 나일론, 폴리에스터 직물, 복합교직물, 면직물, 니트직물 등 전 품목들이 나란히 1.5%~3.5% 범위의 평균단가 하락세를 보였다. 수출 금액 역시 최소 9.2%에서 최대 25.6%까지 폭락하는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 같은 추세는 3~4월을 지나 5~8월까지 더욱 악화일로를 보일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9월 이후 다가올 가을 성수기도 지금으로선 낙관보다 우려하는 경영인들이 훨씬 많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 섬유산업 생태계에서 비롯된 초기 현상임을 업계는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섬유산업 생태계 문제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도 향후 수년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력품목을 대체할 새로운 품목 개발에서부터 생산설비 개체, 기술도입, 생산표준, 거래선 변화에 따른 혼란 등 대응책을 준비하는데만 몇 년은 소요될 수밖에 없을지 모를 일이다. 지구상에서 섬유산업은 영원할 수밖에 없지만 나라별 국격에 걸맞는 품목과 품질, 가격이 형성되는 법이다.

이탈리아, 일본, 독일, 미국 등 섬유 선진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후발국들의 중간 영역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뭔가 특단의 대응책이 필요한 국내 섬유산업이다. 국내 섬유산업이 과거 일본이 손 놓은 품목을 들여와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듯 앞으로도 선진국이 걸어온 길목을 되짚어 보며 우리 국격에 걸맞는 부가가치가 보장된 품목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메이드인코리아 섬유가 세계시장에서 차별성을 인정받아 그들이 제값을 지불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섬유 선진국으로 앞서가는 이탈리아와 일본을 되짚어 보자. 국내 섬유산업 부흥을 위해 나아갈 방향설정과 각고의 노력, 투자를 병행해야 하는 기회와 도전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다.

■ 이탈리아 섬유산업
유럽 27개국 중 유일하게 성장세 전환
정부·기업 조화된 팀웍으로
선제적 품목개발 주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이탈리아 섬유산업을 조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지난해 80억2200만 유로(추정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전년 대비 3.8%의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후 지난해부터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지역에서 섬유산업으로 성장한 국가는 이탈리아가 유일하다.

이탈리아 역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 등 후발국들의 저가 제품경쟁으로 지난 2년간 섬유산업이 크게 위축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부가 잇따라 부양책을 내놓고 섬유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이탈리아 특유의 뛰어난 품질, 혁신, 세계화란 슬로건을 내걸고 시장 대응형 제품을 잇따라 출시, 지난해 2년간의 적자를 마감하고 흑자로 돌아섰다.

섬유, 직물류 수출은 12억2400만 유로 규모로 한국과는 주력 수출 품목군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모직물 37.2%, 면직물21.5%, 편직물19.9%, 견(실크)직물17.9%, 마직물3.5% 순으로 수출 순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현지 수출시장에서 한국산 직물류 및 의류가 크게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10월 누계 이탈리아 섬유수입 집계를 보면 중국산과 터키산 수입이 전체 수입의 절반 수준인 47.7%에 달했다. 파키스탄도 12.7%에 달해 이들 3개국이 이탈리아 수입 직물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한국산 직물은 오히려 對이탈리아 수출에서 7.6% 감소하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이는 품질 대비 가격경쟁력과 시장을 간파하지 못한 정보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향후 국내 섬유산업이 수출지역별 맞춤형 전략수립과 정보수집,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품목개발이 시급함을 알려주고 있다.

시장맞춤형 대응보다 양산체재를 고집하며 일관해온 국내섬유 산업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이에 따라 향후 이탈리아 등 선진국으로의 규역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수출품목의 차별화와 경쟁력제고, 시장 맞춤형 직물개발이 시급하게 됐다.

■ 일본 섬유산업
자발적으로 생태계 전환
산업용 특수섬유·바이오섬유·
친환경섬유 등으로 재무장
70년 후반에서 80년 초·중반 경 일본은 독보적인 품질로 자국 섬유산업을 부흥시킨 폴리에스터 강연감량직물을 한국으로 넘겨주기 시작했다. 이미 폴리에스터 강연감량직물은 일본 국격에 맞지 않는 품목인데다 높은 원가부담으로 부가가치 창출에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싼 인건비에 고효율의 노동력 등 마치 찰떡궁합이라도 만난 듯 폴리에스터 강연 감량직물은 대한민국 섬유수출의 일등공신으로 급부상했다. 중동향 아바야, 로브직물도 이후 국내 섬유산업으로 입성해 한국 섬유산업의 주춧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한국에 주력 품목을 다 주고도 일본은 또 다시 도약하기 시작했다. 국격에 걸맞는 품목을 찾아 한발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가 분석한 일본 섬유산업 현황에 따르면 일본은 고감성, 형태안정성 소재 등 기능성 섬유로의 생태계 전환을 자의적이고 선제적으로 단행했다. 특히 90년대 들어 일본섬유산업이 정점을 찍고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자 2007년 첨단기술과 감성섬유로의 도전을 꾀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구조개혁과 기술력강화, 해외 정보분석, 인력양성 등이 구조개혁의 골자였다. 이후 일본은 탄소섬유 세계시장 점유율을 69%까지 끌어올린데 이어 의료, 생활, 산업, 건축 등으로 용도전개 가능한 부직포 산업의 성장을 꾀해 그들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특히 섬유산업 특유의 에너지 다소비형을 타개하기 위해 에너지형 설비개발과 제조기술 및 제조기계도 잇따라 개발해 냈다.

그 결과 3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섬유산업은 재활용기술, 유해화학물질 배출억제 기술 등을 잇따라 개발해 낸데 이어 수퍼섬유인 탄소섬유 생산기술과 기반을 구축, 세계 최고의 수퍼섬유와 바이오 및 친환경 섬유산업 영역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군으로는 리사이클 소재(텐진, 유니티카), 울 복합 수용성 PVA섬유(구라레), 대나무 소재의 환경친화형 소재(마루조), 썬 브레이크 소재(쿠라레이), 트리 아세테이트형 폴리에스터(미쯔비시), 쿨기어, 드라이기어(토요보), PTT와 천연섬유(플렉스프리 등)의 융·복합소재 (쿠라보), 인공투석 부직포(아사히 화성), 탄소섬유(도레이) 등이 있다.

이 같은 친환경 소재와 첨단 산업용 신소재를 잇따라 개발, 블루오션을 만끽하고 있는 일본 섬유산업은 향후 생체 대응형 바이오 직물과 4계절 온도감응 및 컨트롤이 가능한 바이오섬유 및 신소재를 개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한국 섬유산업
생태계 변화 타이밍 놓친 채
갈 길 멀고도 바쁘다
폴리에스터 강연 감량직물, ITY싱글스판 니트, 면직물, 화섬복합교직물, 나일론직물. 국내 섬유산업 수출 5대 품목들이다. 이들 품목은 싼 인건비와 세계 최고의 첨단 생산설비를 갖춘 중국과 여타 후발국들의 맹추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면직물, 교직물, 폴리에스터 및 나일론 직물은 중국 등 후발국들의 추격이 매섭게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을 수밖에 없다. 과거 국내 섬유산업이 일본 제품을 싹쓸이하듯 빼앗아 온 것과 같이 이제는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을 타이밍이 왔음을 작금의 여러 가지 대외 정황에서 알 수 있다.

대구경북 섬유업계도 이제는 올 때가 왔다는 반응들이다. 작금의 품목들은 20~30여년 동안 국내 섬유산업을 지킨 버팀 품목들이었다. 하지만 세월과 생태계 싸이클을 이겨 내기엔 역부족이다. 우리 국격에 걸맞는 품목개발을 통해 우리의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를 통해 시장규모를 지키고 성장해 나가야 하는 막중한 과제도 국내 섬유인들이 짊어지게 됐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리는 법이다. 연간 160억~200억 달러 규모의 수출 시장을 지키고 개척할 품목들을 서둘러 개발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중장기적으로 생태계 기반구축 이후 수출 규모를 더욱 확대하는 전략도 펼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당장 생태계 변화에 따른 우리 국격에 걸맞는 수출품목을 개발해 내는 것이 시급하다. 섬유인, 섬유연구기관, 학계, 언론(전문), 정부, 지자체, 섬유단체 등 산·학·연·관이 긴장의 끈을 잡고 해법을 찾아 나설 때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원장 문혜강)이 일찌감치 산업용 특수섬유와 일반섬유의 융복합을 통해 하이브리드 섬유를 개발하기로 하고 정부에 사업계획을 신청해 놓고 있다. 이 사업은 예비 타당성조사를 거쳐 사업 확정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섬유기업들이 하이브리드 섬유 제품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가왔다.

이미 발 빠른 산지 대표 기업들은 탄소섬유, 아라미드섬유, 고강력 폴리에스터, 폴리케톤 등 수퍼섬유의 상용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S사는 아라미드섬유를 활용한 용도 전개폭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 3년 여 간 연구와 개발을 거듭해 양산에 착수한 성과를 거뒀다. 개발 제품은 자동차 부품을 핵심으로 전자, 건축, 단열, 흡음재 등으로 용도가 확대되면서 20명 이하의 근로자로 연간 매출액을 60억원대로 끌어올리는 쾌거를 거두고 있다.

꿈의 섬유로 불리는 탄소섬유 역시 구미와 전주지역에서 각각 불을 지피고 있어 점진적인 생산 확대도 가능할 전망이다. 대구산지 일부 기업들은 이 같은 앞서가는 산업용 차별화 소재를 일찌감치 개발, 매년 시장을 확대하며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산업용으로의 진입을 원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개발노력 또한 전개 중이어서 다양한 차별화 산업용 소재 전개도 가능할 것으로 연구기관과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은 주력 수출 품목군인 의류용 섬유다. 그동안 고기능성 섬유개발 기술을 응집하고 사 가공 기술을 접목하는 등 화섬직물의 기능성을 높이는 신소재 및 신기술, 신공법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생활 및 가정용 섬유시장 역시 확대일로에 있어 국내외 시장을 겨냥한 제품개발에 나서는 것도 주효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최강으로 군림해온 독일이 점차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국내 생활 및 가정용 섬유생산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피카놀 레피어직기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국내 공급이 100여 대에 달하는 등 불황속에서도 초 고성장세를 누리고 있다. 특히 친환경 바이오 소재 역시 의류용과 생활용 및 다양한 용도 전개 폭을 발휘할 것으로 보여 유망 품목 군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의류용 섬유 역시 여전히 생태계를 지키는 버팀 품목으로 시장을 개척할 과제를 안고 있다. 화섬복합직물은 가격 대비 경쟁력이 있는 품목이 많아 여전히 입지를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자연섬유와 화섬사의 융·복합을 통한 하이멀티 플라이 팬시 깅감직물은 개발 여지와 기술력, 인프라 등이 충분히 남아있어 향후 생태계 대응 품목으로 확대 가능성이 높게 나타날 전망이다. 화섬 고기능성 깅감 직물 역시 의류용과 생활, 산업용등으로 수요 증가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개발 리스트에 담을 가치가 있어 보인다.

특히 국내 섬유산업은 일본, 이탈리아 등 섬유 선진국과 중국, 터키 및 후발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 제고 노력이 절실한 국면에 처해있다. 한국과 대등한 기술력을 갖춘 대만에 이어 중국의 양적팽창, 터키의 시장개척력 등을 극복하기 위해선 원가 경쟁력과 제품 차별성이 시급한 만큼 신소재 개발과 융복합을 통한 부가가치 제고와 차별화를 꾀하는 노력을 경주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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