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높아지는 ‘승자 독식’…균형발전엔 毒이다
본지는 대부분 기업 실적이 완료되는 지난 21일을 기준으로 국내 47개 섬유패션 상장사 실적을 분석했다. 결과, 우리 기업들의 기초체력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47개사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한 약 10조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평균 6.1%로 전년보다 0.5% 포인트 향상됐다.
해외 경기 부진과 극심한 내수 부진속에서도 매출과 영업이익률 향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이는 치열한 원가절감 노력과 경영합리화를 통해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의 경우 각 기업들은 시장에서 물건이 팔리지 않아 공장가동률을 낮추는 등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당했지만 이와 아울러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이 병행돼 기업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영업이익률 면에서는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패션 기업들은 ERP(전사적자원관리), SCM(공급망관리) 같은 선진 패션상품 기획 프로그램 도입과 유통망 정비를 통해 쓸데없이 새나가는 돈구멍을 틀어막는 등 경영합리화를 시도한 덕분으로 받아들어지고 있다. 본지가 렉트라코리아와 함께 PLM(Product Lifetime Managemant) 시스템 도입을 위한 상호협력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섬유패션기업 실적 분석 결과는 예상보다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부분도 적지않다. 가장 크게 지적되는 부분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상위 몇 개 업체가 해당 업종 전반의 실적을 좌우할 만큼 상위그룹의 독주체제가 확고히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션부문의 경우 상반기중 매출 1000억원이 넘은 상위 11개사는 패션업종 전체 매출의 79.4%를 차지했다. 영업이익 비중은 무려 88.2%에 달했다. 상위 44% 기업이 해당업종의 이익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치열한 자구 노력으로 불황 극복
상위기업이 전체 이익 독차지
‘빈익빈 부익부’ 불균형 심화
중소기업 균형발전 필수요소
‘섬유의 날’ 中企 사기진작 절실
화섬과 의류수출 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효성과 영원무역, 한세실업 등 3사는 매년 양호한 실적으로 국내 섬유패션산업을 견인하는 중추 역할을 하면서 해당 업종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탑독(Top Dog) 지위를 굳히고 있다.
한국 제조업은 자주 대만과 비교되곤 한다. 양국은 비슷한 시기에 산업화를 시도했고 이를 정부가 주도함과 동시에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와 과정은 유사했으나 한국은 중화학공업 위주의 중후장대 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 위주로 발전한 반면 대만은 부품·소재 등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위주로 나아가는 등 그 방향은 크게 달랐다.
각각의 장단점은 있지만 대만 같은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는 위기에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종종 산업 균형 발전의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IT 산업이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소위 ‘1명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 리더십’의 대두로 대만형 발전 모델이 수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독일의 사례를 보면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섬유패션업종은 바로 이 같이 중소기업이 탄탄하게 허리를 떠받쳐야 지속가능한 산업이다. 대기업이 손대기 어려운 직물 제조나 봉제는 결국 중소기업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익은 적게 나면서 인력 고용은 많은, 말하자면 고부가가치를 지향하면서 노조의 힘에 크게 휘둘리는 대기업이 진출하기에는 근본적으로 어려운 산업이라는 뜻이다.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거두는 사례는 국내외적으로 발에 채이고도 남는다.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중소기업은 오히려 최근 한국 사회가 화두로 삼고 있는 ‘경제 민주화’라는 명제를 실천하는데 큰 기여를 하는, 가꾸고 보듬어야 할 보배와 같은 존재다.
연말이 되면 정부와 산업계는 그간 실적을 바탕으로 산업 발전에 기여한 기업체들의 공로를 기리는 행사를 성대히 연다. 섬유패션업계는 매년 11월11일 ‘섬유의 날’이 그런 날이다. 올해 섬유의 날에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칠만큼 절묘한 중소기업 사기 진작의 묘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