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르는 ‘거위의 꿈] 남성복 ‘페더딘 인 펄’ 김도영 디자이너

트렌드 아니다, 원하는 걸 제시할 뿐

2015-05-26     이원형 기자

정글같은 패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꿈을 만드는 신진 디자이너들,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는 기성 디자이너들도 모두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본지는 이번 연재를 통해 ‘나만의 옷을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신예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힘들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본업에 매진하는 이들이 있기에 한국 섬유패션산업 미래는 밝다.

여러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옷, 유행에 쥐락 펴락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을 위해 진학했던 학과는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는 어학 연수를 핑계로 영국 옥스퍼드로 떠났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입학해 남성복을 전공했다. 그리고 2015 F/W 서울패션위크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알린다. ‘페더딘 인 펄(PETHIDINE IN PEARL)’ 김도영 디자이너다.

브랜드 네임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페더딘은 몰핀의 한 종류. 진주라는 아름다움 속에 파묻힌 예쁘지 않은 것. 그래서 약간은 파괴적인 요소가 내재됐다. 하지만 그 부서짐 또한 로맨틱하게 다가온다는 김도영 디자이너. 멜랑꼴리한 철학 문제처럼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답을 찾으면 그 자체로 명쾌해진다. 그는 그저 옷을 사랑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누구보다 순수한 디자이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짧게 락밴드에서 활동했다. 누나를 통해 새로운 패션 잡지를 매달 접하면서 옷이라는 개념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겼다. 세계 3대 패션스쿨로 불리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가게 된 이유도 영국 음악 영향이 컸다.

“세인트마틴스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 준 가이드 였죠. 옷 하나를 10분 넘게 보고 있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새로운 도시와 환경은 한국 안에서만 공부해 왔던 저에게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능력을 키워줬어요.”

얼마전 그는 생애 첫 데뷔쇼를 무사히 치렀다. 하지만 아쉬움 또한 많아 보였다.

“아쉬움이 커요. 더 나은 쇼로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요. 더 잘하고 싶어요.”

이번 쇼에서 그는 뉴 로맨티시즘 문화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80년대로 돌아갔다. 그 시절 런던 일대를 흔들어놨던 더 블리츠 클럽(The Blitz Club)에서 영향을 받았다. 남자들이 치마를 입고 화장하는 중성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펑크의 연장선이기도 한 이 곳에서 파생된 점프수트, 바이커 자켓은 김 디자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클럽 안에선 누가 무엇을 입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미쳐서 놀 수 있는 그 공간. 그의 자유로운 감성이 잘 부합된 컬렉션이었다. 소재도 실크, 울실크, 코튼 등으로 고급스러우면서 퇴폐적인 느낌을 살렸다.

김 디자이너를 보면 역사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간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흡수하고 향유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의 패션 작업은 대체 어떨지가 궁금해졌다.

“옷을 만드는 일이 항상 쉬운 과정만은 아니에요. 패턴, 원단, 실루엣까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요. 저는 이미지 보는 걸 좋아해요. 보는 것만큼 뛰어난 공부는 없어요. 학생 때부터 어거스트 샌더, 다이앤 아버스의 흑백 사진 보는걸 좋아했어요. 차분해지고 생각도 정리 되거든요.”

이제 막 패션계에 첫 발을 뗀 김 디자이너는 여자와 남자를 구분 짓지 않은 유니섹스 라인을 시작하려 한다. 여자는 스키니진, 남자는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모두가 조화롭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패션 뿐만이 아닌 문화 영역 전반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를 보면서 배우고 또 배운다”며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마지막 입을 뗐다.

“새로운 걸 만든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한 분야에서 나의 것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게 가장 행복한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