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코오롱 30년 숙원사업 마음껏 펼쳐라

2015-05-15     전상열 기자

“이제부터 30년 숙원 아라미드 섬유사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반드시 성공하는 사업으로 이끌겠다.” 아라미드 섬유사업에 대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속내는 이같이 각별하다. 지난 1986년 코오롱은 당시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라 꼽히던 아라미드 섬유를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고 알렸다. 코오롱의 아라미드 섬유 개발 소식은 당장 큰 센세이션을 불렀다. 당시 코오롱 주가를 10일 이상 연속 상한가를 이끄는 등 최첨단 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는 대단했다.


지난 5월1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미국 듀폰과 6년간 끌어온 아라미드 섬유 소송전을 끝냈다고 밝혔다. 소송전은 한·미 양국의 걸출한 기업 간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불리며 일약 세계적 이슈로 떠올랐다. 6년여 양사간 자존심을 앞세운 건곤일척의 승부가 펼쳐졌다. 승부는 요동쳤다. 1심 재판부는 듀폰에, 2심 재판부는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손을 각각 들어줬다. 마냥 갈 것만 같았던 소송전은 2심 판결이 난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4년 4월3일 미국 연방항소법원(2심)으로부터 미국 동부지방법원(1심)의 판결 무효화를 골자로 한 항소심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9년 2월3일 미국 듀폰이 코오롱을 상대로 아라미드 섬유에 관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나선지 5년 2개월 만에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렇지만 5년여를 넘긴 소송전은 코오롱에 영광의 상처만 안겼다. 코오롱의 아라미드 섬유 관련 영업에 족쇄를 채우는 상황이었다.

코오롱은 1986년 아라미드 섬유 시험생산에 나섰다. 아라미드 섬유 상업생산은 파일럿 생산을 거치면서 20년이 경과한 지난 2005년 브랜드 ‘헤라크론’ 출시와 함께 본궤도 진입을 알렸다. 그렇지만 호사다마가 따로 없었다. 권불십년이라 했으나 상업생산은 단 4년 만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듀폰의 노림수가 코오롱을 겨냥했다.

‘송사 3년이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말과 다를 바 없었다. 듀폰과의 소송에 휘말리면서 수년간 연 7~800억원대 매출에 머물렀다. 영업전략 수립과 시행에도 곤란이 뒤따랐다. 국내외 바이어들은 듀폰과의 소송결과에 따라 코오롱의 아라미드 섬유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며 오더 주는데 소극적으로 나왔다. 30년 숙원사업은 밑도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 상황을 맞았다.

세계 3번째 자체기술 아라미드 섬유 개발

20년 만에 헤라크론 대량생산 알렸지만

듀폰과 송사 휘말리며 6년여 제자리걸음

유리한 2심 판결 불구 逐鹿者不見山 용단

꿈의 소재를 신성장 동력삼아 성공사업으로


유리한 2심 판결을 받아냈지만 코오롱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앞으로 듀폰과의 송사도 시간과의 싸움으로 전개될 게 뻔하다. 5년여 송사를 거치는 동안 구미공장 생산시설 규모는 아직도 연 5000t에 머무는 제자리걸음만 걸었다. 신성장 사업으로 키워내겠다는 숙원사업의 꿈은 단지 허상에 그칠것이라는 상황까지 배제치 못하게 됐다. 리더의결단만 남았다. 소송전이냐, 타협이냐, 판단은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이었다. 중국 남송의 승려 허당 지우가 허당록(虛當錄)에 쓴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코오롱·듀폰간 6년여 송사의 마침표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치킨게임 마냥 쌍방이 철철 피 흘리는 싸움은 피했다. 듀폰은 2심 판결에 대한 부담감을 덜었고 코오롱은 아라미드 섬유사업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쌍방이 필요한 상생의 묘를 절묘하게 나눴다. 또 독점적 지위에 있는 글로벌기업과의 지식재산권 분쟁은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큰 장애다.

코오롱이 합의로 실타래를 풀어나간 수순은 앞으로 유사사례의 반면교사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쌍방이 명분을 살리는 경우다. 그리고 3억6000만 달러에 이르는 배상금을 물어야 하지만 기회비용에 대한 가치를 더 크게 봤다. 이 회장은 아라미드 섬유사업은 코오롱의 30년 숙원사업이라 했다. 기회비용은 배상금을 상쇄시키는, 멀리 내다보는 CEO의 판단과 맥이 닿는다.

아라미드 섬유는 같은 무게 강철보다 강도가 다섯 배 센 꿈의 소재라 불린다. 열과 화학약품에 강하고 500℃ 이하 불에서는 타거나 녹지 않는다. 방탄복과 헬멧, 산업현장의 밧줄이나 케이블 등의 소재로 쓰인다. 앞으로 융복합을 통한 고부가가치 섬유의류용으로 수요창출에 기대도 높다. 2014년 아라미드 섬유 세계시장 규모는 2조원대로 알려졌다. 미국 듀폰의 케블라, 일본 데이진의 테크노라가 세계시장 90% 이상을 장악한 가운데 이들의 아성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미는 코오롱의 헤라크론 행보가 다시 큰 관심사로 떠오른 순간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