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영양 박사(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 관장)

2009-06-10     한국섬유신문

“선진국은 문화를 파는 나라”
세계최초 자수예술 체계화
세계유일 ‘텍스트북’ 발간

“정영양자수박물관은 전통자수제품을 전시하는 곳만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溫故而知新의 장이죠. 많은 한국의 후 학도들이 이곳을 찾아 공부를 하고, 또 다양한 논문의 재료로 삼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뿌듯해 옴을 느껴요. 이곳이 한국의 텍스타일 디자인 산업을 이끄는 잉태의 장으로 日新又日新 했으면 합니다.”

지난 6월5일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 관장실. 이 날 이곳에서는 기자와 뜻있는 인터뷰가 있었다. 바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자수예술가이자 전통 텍스타일·자수역사 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정영양 박사와의 만남이었다. 정 박사는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세계가 인정하는 자수예술가다. 그런 그였으나 이날 기자와의 첫 말은 조금 들떠 있었다. 자신을 세계적인 자수예술가로 끌어올리는 학문적 연구를 뒷받침했던 유물들이 한국의 후학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데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유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이다.


정영양 박사는 세계최초로 자수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려온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평생을 자수예술 분야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모친의 영향을 받아 여성으로서의 자수바느질을 익혔고, 그리고 한국경제가 궁핍했던 20·30대에는 익힌 자수바느질을 여성들에게 가르치면서 그들을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었다. 1965년 ‘국제자수학원’ 설립을 통해서였다.
특히 1967년 사회복지부 후원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 직업 자수센터 ‘여성센터’는 그에게 새로운 자수의 세계를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바로 그해 일본 Handicraft 협회 초청을 받아 일본의 요조숙녀를 길러내는 곳으로 유명한 이케노보 여자대학에서 연 자수 작품 전시회가 그것이다. 일본에서의 전시회는 그에게 자수 비즈니스를 눈뜨게 했다. 자수교육자로서 뿐만 아니라 자수 비즈니스 우먼으로 새로운 길을 걷게 한 것이다. 그는 일본 세이부, 다까시마 등 유명 백화점에 쇼윈도우를 개설하고 자수 마케팅을 주도했다.


“당시 일본에서 자수를 놓은 손수건 한 장이 5달러에 팔릴 정도로 가격이 높았습니다. 또 세계적 트렌드였던 히피 선풍은 미국시장까지 진출하게 했지요. 블라우스에 자수를 놓은 제품이었죠.” 정 박사는 “자신이 자수 사업가로 길을 걷게 된 것은 ‘繡를 하는 사람의 물건은 무조건 팔아야지’ 하는 마음이 앞섰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하는 본질은 자수예술의 학문적인 체계화에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자수 소장품이 많지 않았다. 이는 자수예술을 연구·발전시키려는 그의 욕구에 한계로 작용했다. 그러나 사업가로서 그의 미국진출은 그토록 목말라했던 자수예술 연구에 단비가 됐다. 그 단비는 1968년 뉴욕대학 입학으로 연계된다. 그는 뉴욕대학에서 미술교육학과 자수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진정한 자수예술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텍스타일 연구소에서 서양과 동양의 자수연구에 열정을 쏟았다. 그의 이 같은 열정은 1976년 ‘중국 일본 한국 자수의 기원과 역사적 발전’ 제하의 세계최초 자수전문 연구논문을 완성케 된다. 그리고 그는 이 논문으로 뉴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 박사에 있어서 70년대는 자수예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지식을 높이는 대중화시기였다. 이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개최한 중국 龍袍 전시회 고문을 맡은 게 계기였다. 자수에 대한 관람객의 큰 호기심은 그가 강의 실습 집필 교육 워크샵 전시 등 자수예술을 알리는 왕성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1979년 자수의 역사성을 강조한 그의 첫 저서 ‘The Art of Oriental Embroidery’는 자수 분야의 표준 지침서로서 더 유명하다. 또 이를 통해 기존 ‘섬유예술은 비주류 예술’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05년 그는 일생에 걸쳐 연구한 성과물 즉 동·서양의 자수예술을 총망라한 ‘Silken Threads’를 내놓았다. 이 저서는 세계유일의 자수 텍스트북이기도 하다.
이 같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던 정 박사는 2004년 세계화에 기치를 내건 숙명여자대학교와 운명적인 만남에 이른다. 바로 문화비전을 통해서다. 그리고 세계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없는 대학교 박물관에 개인의 이름이 붙여지는 영광을 안았다. 바로 2004년 5월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 개관이다.
정 박사는 매년 정영양자수박물관 개관 일에 맞춰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등 자수예술의 선구자로서 그의 열정을 과시해 왔다. 올해는 개관 5주년을 맞아 지구환경을 주제로 세계적인 권위의 섬유예술가 Jon Eric Riis와 현대미술가 Daniel Carranza를 초청, 최첨단 디자인의 세계를 국내에 알린다. 이번 인터뷰는 전시회 개막일에 맞춰 귀국한 정 박사의 일정에 따랐다.


-정영양자수박물관 개관 5주년을 맞았다. 지난 5년간을 평가한다면.
“한국의 후학들에게 내가 40년 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산교육의 장이 됐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곳이 한국의 텍스타일디자인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텃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또한 잊지 않는다. 자수예술은 선인들의 기술과 정치적인 상황 그리고 외교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제작된 시기의 기술과 사회·경제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와 지역적 미감, 개별 작가의 창의력이 담겨진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이 때문에 박물관은 자수의 전시로서만 그 역할이 끝나서는 안 된다. 이를 고찰하는 학문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곳은 자수의 전시장이 아닌 역사의 관찰과 미술의 세계,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을 개발하는 연구의 장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자수예술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 열정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의 우수한 예술성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자수는 한국예술의 우수성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예술의 寶庫이다. 한국인은 손재주가 많다. 자수뿐만이 아니다. 자리문화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중의 하나다. 이제는 이것을 팔아야 한다. 선진국인 것은 다름 아니다. 문화를 팔 수 있어야 한다. 자수예술은 큰 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여자는 탤런트가 있어야한다’는 말씀은 평생 이 길을 가게 한 원동력이 됐다.”


-올해 개관 5주년 기념 전시회는 무엇을 담았나. 또 이들 작가와 자수와의 만남은 무엇을 의미하나.
“무엇보다 녹색의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다. 하나 뿐인 ‘지구를 지키자’는 의미를 담았다. 우리 삶의 생활환경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하는 지구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세계최고 테피스트리 권위자가 펼치는 환상의 디자인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우리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라틴아메리카의 정신이 살아있는 환상적인 디자인은 평소 접하지 못했던 색다른 의미를 부여할 것으로 본다. 자수든 섬유예술이든 현대미술이든 디자인의 창작은 끝이 없다. 다만 바늘로 표현하거나, 실로 나타내거나, 붓으로 그리는 게 다를 뿐이다. 쓰는 재료만 다르다는 의미다.”


-한국 텍스타일디자인 산업의 발전을 위한 충고가 있다면.
“섬유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은 다름이 아니다. 텍스타일디자인 창조가 키워드다.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 외국에 나가봐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보라. 또 직접 부딪쳐라. 글로 옮겨라. 자연은 디자인 창출의 근원지나 다름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도 디자인 창조의 열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