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억5000만 동남아 봉제 대국 인도네시아를 가다

글로벌 스탠다드 주도 韓 기업 ‘임금차별·노동착취’ 옛말 ​​​​​​​현지 대졸 초임 수준 임금, 각종 복지혜택 수혜 500개 기업 50만명 고용, 印尼 경제 성장의 버팀목

2014-05-19     정기창 기자

2013년은 일반인들에게는 대통령 선거로 정권이 바뀐 해 정도로 기억하겠지만 해외 진출한 우리 벤더 기업들에게는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발생한 연도였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도하는 기업 규모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이다.

방글라데시 봉제공장 참사와 캄보디아 유혈 진압 등 사태를 지나면서 국내외 NGO들은 현지 실태 조사 보고서를 내고 열악한 근로환경과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 현실을 고발하는 등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최근 베트남에 이어 동남아시아 봉제 생산 중심으로 각광받는 인도네시아의 한국 봉제 주력 기업들을 둘러보고 지역별 임금 수준과 근로 환경을 점검하는 기획 기사를 마련했다.

■ 자카르타 까베엔(KBN) 공단
실질 임금 250~350불 수준, 업무량 대비 만족도 높아
올해 최저임금 244만 루피아, 전년 대비 약 23% 인상

자카르타 수도의 까베엔(KBN) 공단에는 약 78개의 의류봉제기업들이 몰려 있다. 한세실업을 비롯, 한솔섬유, 리무역 등 간판급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진출 1세대 공장들이 이곳에 있다. 여기서 딴중 쁘리옥(TJ PRIOK) 항구까지 거리는 약 15km. 짧은 거리지만 인도네시아는 교통 정체가 심해 컨테이너가 몰리는 날에는 1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그러나 공항와 항만이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은 인도네시아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자카르타의 지역 최저임금은 올해 244만 루피아지만 임금유예 노사 합의를 통해 230만 루피아로 결정됐다. 작년 최저임금이 198만 루피아였으므로 약 23%가 오른 셈이다. 여기에 잔업 수당을 합하면 대부분 공장은 260만~350만 루피아를 지급하고 있다.

이중 한세실업(PT. HANSAE INDONESIA UTAMA, 법인장 이진섭)은 월 급여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오더가 몰려 주 54~55시간을 일하며 근로자들은 통상적으로 370불 정도를 받는다. 인도네시아는 오버타임 첫 1시간은 통상임금의 1.5배, 2시간째는 2배의 임금을 지불하게 돼 있어 잔업이 많을수록 급여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세실업 이진섭 법인장은 “통상 대졸 사무직이 300불 선이며 350불이 넘으면 중간 수준으로 본다”고 말했다. 봉제 현장 근로자 월급이 대졸 초임보다 많은 셈이다. 인센티브 제도가 잘 돼 있다는 점도 근로자들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목표치를 달성했을 경우 3단계로 나눠 차등 지급하는 제도를 갖고 있다. 현장 근로자뿐만 아니라 회사에 딸린 기사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도 인센티브를 받는다. 이 같은 근로 여건 개선과 5년 넘게 노사협의체를 운영한 결과 작년 4분기 급격한 임금 인상으로 어려울 때 직원들이 더욱 단합하는 계기가 됐다.

같은 까베엔 공단내의 또다른 봉제기업인 리무역(리무역·서이무역 통합법인장 이채성)은 법정 근로 시간인 40시간 근무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오버타임 차지가 중대한 생산비 증가 요인이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자 공장장은 “주당 근로 시간이 40.3시간이므로 잔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잔업이 없으면 임금은 줄어들지만 인센티브 제도가 잘 돼 있어 업무량 대비 근로자들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 3월에는 전 직원의 85% 이상이 인센티브를 수령했다. 이 회사는 근로자들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SMS(단문메시지서비스)를 24시간 열어두고 3개 통신사 번호로 고충을 해결하고 있다. 1주일에 한번씩 모니터링을 하며 개선점을 찾아나가고 있다.

잔업이 없고 비교적 고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특성상 근로자들 업무 집중도가 높다는 것도 특징이다. 회사 관계자들과 공장을 돌아보는 동안 외부 방문객에 눈길을 주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 조화자 공장장은 “교육을 통해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훈련하고 있다”며 “이는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주목받는 생산지역 수방(Subang)
올해 57% 임금 인상, 생산성 향상에 전력
봉제 산업은 지역 경제 버팀목

약 16개 한국계 봉제 기업이 자리잡고 있는 수방(Subang)지역. 오전 7시30분 자카르타 시내의 호텔을 출발해 수방 뿌르와다디(Purwadadi)의 윌비스(PT. WILLBES GLOBAL) 공장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다 돼서였다. 100km 남짓한 거리를 4시간 넘게 달린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수방에 닿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벗어나자 길은 이내 험한 자갈밭으로 변했다. 우기(雨期)에 물에 잠긴 저지대 도로는 아스팔트가 완전히 벗겨져 움푹움푹 패였고 깊은 웅덩이는 돌멩이를 채워 임시로 차들이 달릴수 있도록 해 놨다.

윌비스(법인장 김돈환)는 2008년 이곳에 진출했다. 32개 라인에 2900명이 근무하고 있고 월급은 20일 근로 기준 180만 루피아 수준이다. 수방 지역은 올해 최저임금이 157만 루피아로 전년 대비 56.9%가 올랐다. 가히 살인적인 인상률이다. 윌비스는 생산비 절감을 위해 근로자 숫자를 줄이고 있는 타 공장과 달리 오히려 인력을 늘리고 있어 주목된다.

김돈환 법인장은 “올 상반기 최저임금이 57%나 올랐는데 잔업을 할 경우 급격히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최적의 생산 효율을 위해 인원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을 5% 늘리는 대신 생산량을 15% 늘리는 방식이다. 김 법인장은 “오버타임 차지(charge) 부담이 커 이제는 근로 시간을 줄이는 게 중요해졌다”며 “지원부서 등 인력을 늘리는 대신 생산량을 올림으로써 전체 비용을 하락시키는 방향으로 효율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그는 “베터워크(Better Work, 국제노동기구(ILO) 산하 기관)에서 인센티브 지급은 세금 탈루로 인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현물 지급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대신 2개월에 한번씩 작업복, 우산 등 현물을 모든 근로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김 법인장은 “생산목표 미달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근로자들 불만이 고조된다. 말 그대로 성과급이 아예 정기 월급화하는 폐단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신물산은 수방에 현동(PT. HYUNDONG INDONESIA)과 크레비스(PT. CREVIS TEX JAYA) 2개 공장을 갖고 있다. 17개 라인에 1200명이 근무하는 현동은 고가 소량 생산에 치중하고 차량으로 5분 거리에 떨어진 크레비스는 이보다 규모가 더 크다. 28개 라인에 2000명이 근무하고 있다.

방병욱 통합법인장은 “임금은 57%가 올랐지만 원가비중을 따지면 실제 22.5% 인상 효과가 있다”며 “10%는 단가인상으로 커버하고 나머지 12.5%는 생산성 향상으로 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휴 노동력을 줄이고 전기료 등 기타 경비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최신물산은 올해부터 현동과 크레비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모범사원에게 오토바이를 지급키로 해 근로자들의 근로 의욕을 크게 끌어 올렸다. 두 곳 공장에서 매월 모범사원을 선발하고 6개월에 한번씩 추첨을 통해 오토바이를 지급할 계획이다. 매년 14명이 수혜를 받는다. 여기서는 오토바이가 가장 큰 재산이라 근로자들이 모범 사원에 선발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방 법인장은 “수방 지역 최저임금 157만 루피아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 주 소득원은 농업과 고무나무 관리, 논에서 나오는 모래 채취 사업인데 봉제 공장이 없어지면 지역경제는 거의 무너지는 수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 재정이 열악한데도 기업을 유치하기 보다는 ‘기업이 무엇을 해줄 수 있냐’는데만 관심을 쏟는다”고 지적했다.

방 법인장은 의미 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주당 근로시간이 각각 48시간, 40시간인데 이를 감안하면 작년 기준 급여 차이가 1불에 불과했다”며 “올해는 인도네시아와 임금이 같아지거나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방 지역 실질 평균 지급 임금은 월 220~230불대 수준이었다.

■ 자카르타와 동일 수준 임금 까라왕 (Karawang)
‘신원’ 유일한 한국계 대형 스웨터 기업
직원 900명, 지역 고용효과 3000명 육박

바라트의 또다른 봉제 밀집 지역인 까라왕(Karawang). 이곳은 과거 인도네시아 스웨터 생산의 집산지였다. 자카르타와 동일한 수준의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탓에 대부분 기업이 임금이 싼 다른 지역으로 옮겼지만 신원(PT. SHINWON EBENEZER)은 유일하게 대형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