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올해 여름은 시원했다, 내년 여름에 비해서"
인류세에 기록될 뜨거운 여름 점점 더워지고 있는 이상기후 징표 기후위기·‘지구 위험 한계선’ 심화
인류세에 기록될 뜨거운 여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예년 같으면 태풍이 올라올 때쯤이면 무더위도 한풀 꺾이련만 올해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은 한 달이 넘도록 한반도에 버티고 눌러앉아 온 천지를 푹 삶아 버렸다.
점점 더워지고 있는 이상기후의 징표는 지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해수면 평균온도(그림1 붉은선 참조)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평균선보다 확연히 올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보다 무려 0.5℃ 높게 출발한 올해 그래프는 과연 어떤 궤적을 그릴지 두려움으로 관찰하게 된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그 또한 지나가게 되어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세월은 화살처럼 빨라 연말엔 분명 우리 모두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있으리라. 그때 우리는 과연 숨이 턱턱 막혔던 지난여름을 기억할 수 있을까? 올해보다 훨씬 더 더운 여름이 내년에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대략 십 년 전 여름 ‘블랙 아웃’이 떠오른다. 언론사들은 전력 수요 위기를 자주 대서특필했다. 이렇게 더울 때 에어콘과 선풍기가 멈춘다면 시민들은 어찌해야 할지 공포의 순간이었다. 더위야 땀흘리며 참는다 해도 병원과 공장, 소방과 경찰이 멈춘다면 아수라장이 될게 뻔했다. 건물마다 정전을 대비해서 임시 발전기를 들여놓고,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자는 캠페인이 방송을 탔다. 눈앞에 닥친 재난으로 전국에 소동이 벌어지고 자연스레 환경 의식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전력 위기와 관련한 기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름 날씨는 더 더워졌는데, 전기 사용량은 줄어든 것일까? 코로나19 기간에도 쓰레기 배출량이 전혀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생산과 대량 소비는 변함없는데 유독 전기 사용량만 줄어들 이유는 없다.
한국전력거래소(KPX)가 공개하는 실시간 전력공급 현황을 보면, 최근 5년간 겨울과 여름 최대전력 수요량은 10% 이상씩 계속 증가했다. 하지만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전력공급 능력도 비례해서 꾸준히 늘었다.
2020년 1월 94.7GW이던 것이 2024년 8월 현재 104.8GW다. 예비전력은 매년 9~10% 수준으로 유지 관리되고 있다. 전기가 모자란다는 말이 없으니, 시민들은 아무 걱정 없이 여름철 냉방기기를 가동한다. 서울 시내 거리를 걷다 보면 상점 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며 호객하는 에어콘 마케팅(?)까지 거침없다.
스웨덴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Johan Rockström) 교수는 2009년에 ‘지구 위험한계선’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지구 생명체의 위기를 판단할 생물학적, 화학적, 지구과학적 요소를 9가지로 정리한 분석이다(그림2). 이중 생물다양성 감소와 질소(N)순환 체계 교란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한계선을 이미 충분히 넘어섰다. 순환 체계 교란과 담수 사용량 증가, 삼림과 토양 황폐화 및 해양 산성화와 오존층 파괴 정도는 위험 경계선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이런 분석이 나온 뒤 15년이 흘렀다. 지구 상태는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요한 교수는 2024년 7월 TED 강연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지구 평균기온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상승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2009년에 지구 위험한계선 다이어그램의 중심에 기후 위기를 그려 놓았던 이유도 더 명확해졌다.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 악화는 사회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지구 자원을 무한정 사용하고 있는 인간의 행동 때문임을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통계자료는 차고 넘친다.
‘올해 여름은 내년 여름보다 확실히 시원했다’라는 문장은 비문(非文)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맞는 가장 정확한 일기예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