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전 산업에 부는 ‘불황형 소비 현상’에 패션업계는
연일 고공행진하는 고물가· 고금리 기조 지속 과시형 ‘플렉스소비’ 사라지고 ‘알뜰소비’ 현상 확산 … 값싼 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경쟁 더욱 치열 유연한 가격전략과 고객 락인 전술 구현 중요
온난화로 인한 사과 재배지 부족과 작황불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금값사과 오명을 비롯해 연일 고공행진 하는 고물가가 화두다. 또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지고 있는 고금리 기조도 지속되는 가운데 과거의 과시형 플렉스 소비가 사라지고 실속을 제일로 따지는 알뜰 소비 현상이 확산되는 추세다.
젊은 명품족과 젊은 골퍼들이 사라진 백화점은 프리미엄 고객 수요가 줄면서 전사 신장률과 영업이익률이 급감했다.
올해 들어 수개 월 만에 가까스로 소비심리가 표준치를 회복했지만 한 경제 전문가는 최근 향후 전 세대를 아우르며 지속적인 우세를 이어갈 비즈니스 테마로 ‘불황형 소비 활성화’를 꼽았다.
2~3년 전 만해도 막대한 투자금 유치로 투자 열기가 뜨거웠던 명품 플랫폼들은 최근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폐업 위기에 처해있다. 혁신의 숲 자료에 따르면 대표 명품 플랫폼으로 누적 투자금액이 750억 원에 달했던 트렌비는 성장 정점에 있었던 22년 5월 기준보다 2024년 1월 기준 트랙픽은 60% 줄고 소비자 거래건수는 70%나 감소하면서 고용 인원을 3분의1로 줄였다. 여타 명품 플랫폼 또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구조조정 및 사무실 축소 등 고정비 절감에 나서며 생존을 다투고 있다.
스마일벤처스가 지난 2019년 후발 주자로 선보인 명품 플랫폼 캐치패션은 글로벌 파트너사의 온라인 공식 상품 채널을 한 곳에 연동한 ‘럭셔리 애그리게이터 플랫폼’이라는 차별점을 통해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는 듯 했다. 최근 몇 개월간 경영악화로 밀린 월급과 줄퇴사 등이 이어지며 이달 19일 서비스 종료를 밝혔다.
반면, 초저가 전략을 내세운 업체들은 ‘불황형 소비’ 활황에 고공행진 중이다. 코어사이트 리서치에 따르면 쉬인의 전세계 시장점유율은 18%로 이미 세계 최대 패스트패션 브랜드에 등극했다. 자라 등이 소속된 인디텍스가 17%, H&M이 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H&M은 특히 쉬인의 저가 공습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알리와 테무는 ‘다이소보다 더 싼’ 200원~1만원 상품이 많아 전 연령층이 사용하며 무섭게 국내 소비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저렴한 상품이 너무 많고 자주 구매해 ‘알리지옥’과 ‘테무지옥’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소비자들이 알리와 테무에 열광하는 이유는 상품 가격이 상식을 파괴할 정도로 초저가여서다. 이들은 여전히 전 세계 30%를 차지하는 중국 공급망 강점을 활용한 DTC(direct-to-consumer)로 고객과 제조사를 직접 연결해 상품을 공급하는 전략으로 가격 거품을 최대한 줄였다.
이렇듯 ‘불황형 소비’란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저렴한 대체재나 가성비 좋은 값싼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의 알뜰소비 현상을 말한다.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억제하고 가능한 싼 제품을 고르며 저렴한 대체재를 선택한다. 불황형 소비의 모습은 다양한 분야와 산업 곳곳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소비자들은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절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를 꼼꼼히 따진다.
대형마트의 용량이 두 배이거나 값싼 PB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비싼 외식 대신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하는 식이다. 불황 때 라면이 많이 팔리는 현상과 수출 호재까지 더해진 농심과 삼양의 주가는 최근 상승세다. 대형마트에선 흠집 난 못난이 과일이나 상처 난 채소를 할인가에 파는 리퍼브 상품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렇듯 값싼 제품에 대한 소비심리와 수요가 증가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소비를 읽으면 흐름이 보인다. 패션업계 또한 차별화된 생존 전략을 못 짜면 입지가 불안정한 기업들의 폐업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보다 신중하게 생산과 재고를 관리하고, 브랜드 명성을 희석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유연한 가격전략과 고객 락인 전술을 구현하며 불황에도 판매를 지속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옳은 방향성과 영민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