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 데스크칼럼] 한국 패션도 문화유산으로 승격 가치 높이자
3개월간 의류 소매판매 평균 증감률 2.6%에 그쳐 보복소비 효과 끝나고 패션경기 하락 시그널 … 국내 패션 산업의 지나친 변동성과 쏠림현상 크리에이티브 발휘보다 ‘생존’ 키워드가 지배적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9월까지 최근 3개월간 국내 의류 소매판매 평균 증감률이 2.6%에 그쳤다. 백화점과 온라인 등에서 패션부문 소매 성장률은 3개월 평균 6%대로 한 자릿수를 넘기지 못했다.
특히 백화점 구매건수는 전년 동기대비 보합 수준을 유지하고 평균 구매단가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어 국내 패션소비 심리가 상반기 이후를 기점으로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고급 원사를 공급하는 한 에이전시 대표는 “굵직한 패션 대기업들이 원가를 줄이기 위해 해외 고급 원사 수주를 전년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나 줄였다. 이는 원부자재, 운송비, 인건비 등 제조 스트림 전반의 비용이 지속 오름세인 반면 패션 소비 활력은 떨어지고 있는 시그널 때문이다. 아이템 당 물량 자체를 줄이고 있는 영향도 크다”라고 설명했다.
의류는 판매 시점을 놓치면 재고에 대한 부담과 함께 한두 시즌 판매 부진으로도 기업의 경영 악화로 이어진다. 백화점 입장에서도 의류는 고마진 카테고리에 해당하고 명품 신장률(21년 40%, 22년 22%, 23년 2분기 기준 2%)의 수요마저 꺾이면서 부정적인 전망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보복 소비 효과가 끝났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2년간 채널, 가격, 복종을 넘나들며 패션 분야는 어디서든 수혜자가 배출됐다. 유동성이 부족한 불황기에는 매출보다는 수익성 지표 개선에 초점을 맞춰 생존 키워드에 방향성을 조정하는 브랜드가 늘어 난다.
한 유명 온라인 브랜드는 경기 탓만 하기엔 국내 패션 산업의 지나친 변동성과 쏠림현상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초만 해도 지인들이 ‘골프 안치냐’고 안부처럼 물을 만큼 6조까지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거셌던 골프 대중화 정세는 1년 반 만에 ‘누가 요즘 골프를 치냐’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차갑게 식었다”고 말했다.
뚝심 있게 중장기적인 방향성을 잡고 가기엔 국내 트렌드가 너무 빨리 휘발되는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불황기에 자칫 방향성을 잘못 잡았다가 생존을 다퉈야하는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까지 키치하고 캐주얼한 Y2K 트렌드 열풍으로 짤막한 티셔츠에 와이드한 팬츠가 힙하다는 캐주얼한 룩킹이 공식처럼 광풍이 불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원피스 맛 집으로 부상했던 한 온라인 여성복 대표는 “올해는 원피스가 너무 안팔린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Y2K 열풍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조용한 럭셔리’, ‘올드머니 룩’이 부상이라며 정숙하고 클래식한 착장이 대세인 극단의 트렌드가 왔으니 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시장은 타 국가에 비해 인구수와 복종별 모수가 상대적으로 작다 보니 생존을 위해 잘 팔릴 수 있는 아이템에 집중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기엔 제한적이고 유니크 장르로 중장기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하기엔 위험성이 크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트렌드에 따라 동질화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최근 이탈리안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유구한 히스토리를 보유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는 다음 세대의 장인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인 ‘아카데미아 라보레 인제니움’을 설립한다는 뉴스를 전했다.
이를 통해 장인들의 수공예 기법에 대한 헌신을 더욱 공고히 보여주고 연간 50여명의 학생을 위한 종합 프로그램을 제공, 수료자들에게는 보테가 베네타의 입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패션 브랜드의 역사와 헤리티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기술과 지식을 함께 전수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패션 분야 또한 트렌드를 넘어 고부가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을 누비며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한 전문 큐레이터는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시계가 가장 빠른 도시’라며 가장 트렌디하고 속도감 있는 힙 한 도시라고 언급했다. K-컬처 내에 패션 또한 단순히 트렌드로 휘발되는 장르가 아닌, 우리만의 유산으로 남는 것은 아직 먼 길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