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무더운 여름, 1.5℃를 낮추는 업사이클
아일랜드는 광고물 부착 축소 법률안 발의 국내 선거 후 재활용 현수막 30%에 불과 싼 현수막, 재활용과정에 물·에너지 낭비 젠니클로젯, 물 사용 않는 디지털인쇄 적용 업사이클링 소재 개발로 패션 영역까지 확장
2022년 5월 아일랜드의 녹색당은 선거철에 광고물을 부착하는 지역을 축소 지정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건물과 가로수, 전신주 등 현수막이나 입간판을 세울 수 있는 시설물을 특정 지역에만 한정하고 규격도 지정해 근본적으로 인쇄제작물의 양을 줄인다는 게 안의 주된 내용이다. 항상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단골 메뉴로 현수막 이슈가 보도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총선 전에 홍보물 제작의 주체인 정당이 스스로 법안을 제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올해 우리는 선거라는 이름의 축제를 두 번이나 치렀다. 불과 다섯 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국 거리를 오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였던 현수막의 생애도 함께 끝이 났다. 흔히 정치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이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치가 남긴 현수막을 처리하는 과정은 우리 삶에 가장 큰 환경적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활동이다. 경제적 편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되풀이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선거가 끝나고 나서 재활용되는 현수막은 30%에 불과하다. 대부분 현수막은 싸게 만든 만큼 사용이 끝나고 나면 쓸모가 없어 불태워진다.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들어 보겠다고 도전하는 시민들의 용기는 가상하나,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물과 에너지가 낭비되고, 완성된 가방도 디자인이나 품질이 형편없어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이래저래 애물단지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버려지는 섬유 자원을 다시 사용하는 기술에 집중해온 업사이클 기업 젠니클로젯은 현수막과 같은 버려지는 천으로 명품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다. 시장 조사와 물성 분석 결과 현수막으로 만든 제품의 결점은 인쇄된 잉크가 번지거나 굳으면서 잘게 부서져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탁을 깨끗이 해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안감을 대고 뒤집어서 쓰는 수밖에 없다.
젠니클로젯은 물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인쇄법으로 현수막 표면을 특수 처리해 이같은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원단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재생 현수막 원단에서 취약했던 방수기능과 오염방지 기능이 향상돼 가방뿐만 아니라 앞치마나 달력 표지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기 수월하다.
젠니클로젯의 이젠니 대표는 입던 청바지를 버리지 않고 자기만의 가방으로 디자인해주는 서비스에서 출발해 업사이클 브랜드와 패션의 영역을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다. 2018년 고 김복동 할머니의 상징 백목련을 수놓은 제품 ‘순백’은 위안부 문제로 첨예했던 사회갈등 속에서 훈훈한 감동을 주며 출시 때마다 품절되는 인기를 끌었다. 업사이클이 사회 이슈에 참여하는 방식에 패션 마니아들이 응답한 결과였다.
올해 초에는 폐기물 처리 문제로 고민하던 골프존으로부터 버려지는 스크린을 공급받아 새로운 소재로 가공한 뒤 패션 소품으로 탄생시켰다. 제품 패턴으로 제로 웨이스트 의미를 담은 영문 이니셜이나 전통 문양을 고급스럽게 사용한다.
최근 서울 명동에 1.5℃라는 이름의 업사이클 아트숍을 열고, 기증받은 청바지에 친환경 코팅을 하여 명품가죽 가방에 뒤지지 않는 데님 가방을 선보였다. 이 가방의 재료가 원래 청바지였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운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업사이클 소재 개발에 천착해온 젠니클로젯의 꾸준함 때문이다.
청바지는 튼튼하고 편리하지만, 쓰레기로 버려질 때는 대책이 없다. 때가 타지 않는 소재의 데님을 만들 때 투입된 염료와 화학 약품으로 오염된 물을 정화하기 위해 우리가 쓰는 비용은 그 편리한 제품을 사용함에 따른 이익보다 크다.
재사용되는 현수막과 폐기되는 현수막, 친환경 코팅을 통해 새로운 소재로 태어나는 현수막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모두 합쳐 계산한다면,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값싼 현수막을 선택한 정치적 이익보다 더 크다. 업사이클 현장에서는 이런 불편한 진실이 늘 꼬리에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