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모토

2000-01-03     한국섬유신문
봉제공장 숲서‘첨단 衣類 流通’메카로 동대문 시장 한가운데에는 동대문 운동장이 있다. 가끔 사람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운동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또 동대문 시장에는 험악하고 허우대 좋은 청년들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이들은 언제부터 이곳으로 흘러 들어 온 것일까. 운동장 주변의 시장은 언제부터 태동해 지 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일까 등등. 기록상으로 알 수 있는 범주내에서 동대문 운동장 자리 는 적어도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큰 인물을 배출해 낸 장소이다. 훗날 왜군을 무찌르며 승승장구할 청년 이순신(李舜臣)은 선조(宣祖) 5년(1572년) 28세가 되던 해 이곳 훈련원에서 무과시험에 응시 합격했다. 무과시 험 도중 말에서 떨어져 다친 다리에 훈련장에 있던 버 드나무 가지를 꺾어 동여매고 다른 말을 갈아타고 합격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은 여기서 멀지 않은 건천동(乾川洞 : 마른 내)으로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인현동(仁賢洞) 1가 10 번지에 해당한다. 다시 400여년의 세월이 흐른뒤에는 정반대의 인물이 동 대문 시장의 위세를 등에 업고 나라에 해악을 끼친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동대문에서는 정치 깡패의 대명 사이자 동대문 사단의 거두인 이정재가 활개를 치고 다 닌다. 이정재는 당시 동대문 시장 상인조합을 통해 축 적한 조직과 자금력을 무기로 자유당 정권과 야합, 정 치 깡패로의 위상을 다져나간다. 그러나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위세를 발휘하던 동 대문 사단은 4.19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들어 가 고 이정재는 5.16 이후 혁명정부의 특별재판부에서 교 수형을 언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시장으로서의 본격적인 역사는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당시 이 곳에는 포목 제품을 취급하는 광장시장 이 들어서면서 현재 동대문 시장의 모태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60년대를 지나면서 폭발적 수요가 발생한 화섬 생 산과 함께 소규모 봉제 공장들이 시내에 생기면서 전국 적 도매산지로 부상했고 당시에 생겨난 시장이 신평화 및 동평화, 남평화 시장 등으로 이들로 인해 이른바 평 화 시장의 전성기가 열렸다. 현대적 의미의 본격적인 「동대문의 봄」이 도래하게된 계기는 현재 동부 도매 상권의 디자이너 클럽이 생기면 서부터. 디자이너 클럽은 1995년 오픈과 함께 남대문 시장의 영업 방식을 도입, 본격적인 도매 상권 부흥의 꽃을 틔웠다. 디자이너 클럽은 기존에 허약하던 상인회 조직을 정비, 상인들에게 강력한 힘을 행사하면서 개인들간의 점포 매매를 상인회 업무로 이관시키고 강력한 중앙 집중적 인 파워를 발휘하는 등 단숨에 동대문 시장 최고의 상 가로 발돋움 했다. 상인과 상인회의 파워가 결집된 일사불란한 화음은 순 식간에 수도권을 비롯한 지방 각 도매 상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여타 상가들도 디자이너 클럽과 같은 체제 를 도입, 바야흐로 「동대문의 봄」 시대의 서막을 알 렸다. 강력한 힘을 보유하게 된 상인회는 우수 상인 유 치에 발벗고 나서게 되고 능력 없는 상인에 대한 강제 입·퇴점을 통해 이미 IMF 이전부터 구조조정이라는 자체 정화 기능을 보유한다. 현대식 도매 상권 형성의 분기점을 아트 프라자 오픈으 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엄격한 기준을 따지자면 상가 운영 방식이나 조직면에서 이 상가는 재래시장군에 속 하기 때문에 이는 일부 소장파 상인들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우노꼬레→팀204→혜양 엘리시움으로 이어지는 신 설 상가의 등장은 국내 상권의 대변혁을 촉발시키는 중 요 요소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이때부터 본격 적인 입·퇴점비 명목의 뒷돈이 오가고 각종 이권을 둘 러싼 상인회 비리로 양측간 불신감이 증폭되는 사태로 비화됐고 이는 아직도 동대문 시장이 떠 안고 있는 중 요 현안으로 등장했다. 이같은 양측간 갈등은 밀리오레, 두산타워 오픈과 맞물 리면서 각종 루머와 피해자를 양산해내는 등 절정을 맞 았다. 상인회 모임 성격이 친목 단체에서 이익 단체로 서의 변신을 꾀하게 되는 계기도 여기에 기인한다. 90년대 말 도매 시장의 대명사로 불리던 동대문 시장은 서부 상권에 밀리오레 및 두산타워가 오픈하면서 또다 른 개념의 대 변신을 시도하게 된다. 이들 상가는 차별 화된 독특한 마케팅과 새로운 방식의 상가 운영 시스템 을 도입, 소매 손님들의 소비력을 일거에 규합하며 국 내 의류 유통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한다. 특히 IMF가 한창이던 98년 8월 오픈한 밀리오레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라는 기발한 카피로 소비자들 의 뇌리에 깊숙이 인식되면서 그 이듬해 오픈한 두산타 워 및 올해 오픈하는 누죤을 비롯, 여타 지방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