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기고] 미래 삶의 전환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자
’19년 매일 50여만t 건축폐기물 발생 불법쓰레기 폐기장은 400여개 넘어 집은 의식주 연관된 모든 산업의 총합 대도시 선형경제에서 더 나아가 도농복합 자립도시형 순환경제 필요
2018년 3월 서울에 온 일본 디자이너 하라 케냐는 미래 주택의 모습을 탐구하는 ‘하우스비전-서울’ 세미나에서 “집에는 모든 산업이 담겨있다”라는 의미 깊은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2011년부터 건축가와 산업계가 협력하여 미래의 집을 제안하는 하우스 비전(House Vision) 프로젝트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미래 주택의 공간과 기능을 자연 친화적이고 효율적으로 재구성하는 디자인과 기획이 담겨 있다. 예를 들자면 집 안에서 언제든 꺼낼 수 있는 내외 개폐형 냉장고를 출입문 바로 옆에 설치, 택배물품을 외부에서 넣을 수 있고 신선식품 운송을 위한 과포장과 환경호르몬을 유발하는 아이스팩 폐기물을 줄인다. 제조산업의 IoT기술과 물류시스템이 건축설계에 반영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2019년에 발생한 하루 폐기물 49만 7000t 가운데 건축폐기물은 절반에 가깝다. 여기에 산업현장에서 나오는 폐기물까지 더하면 90% 이상이 생활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내는 의식주 상품으로부터 발생한다. 통계상으로 이들 폐기물의 85%가 재활용된다고 하지만, 각종 폐기물을 싣고 은밀한 불법매립지를 찾아다니는 유령과도 같은 대형 트럭들의 존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0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분포한 불법 쓰레기폐기장은 400개가 넘고, 그 양은 160만t에 달한다. 요즘처럼 쓰레기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해진 상황에서 집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의적절하다. 집은 의식주와 연관된 모든 산업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은 편리함에 비례하여 폐기물의 해악이 심각하다.
전 세계 전자폐기물은 연간 약 5000만t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폐기물의 양도 문제지만, 무분별하게 수입된 저가 건축자재와 전자제품 플라스틱 속에 함유된 발암물질과 환경호르몬 물질이 소각 또는 매립되어 인체와 자연에 더 큰 피해를 만들고 있다.
폐기물의 양을 줄이고, 자원순환 사회로 가려면 생산과 유통, 소비와 재사용까지 모든 과정에 고도의 기술과 창의적 혁신이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의 혁신과제를 먼 곳에서 찾기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의식주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생산과 소비, 최종적으로 폐기되는 시점까지 모두 고려하여 버려지는 에너지와 소재를 최대한 줄이고, 다시 순환되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 정책은 쓰레기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대도시 선형경제 체제가 아닌 도농복합 소규모 자립도시의 순환경제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코로나 재난으로 인해 시민들은 도시의 삶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장 대도시의 사회 경제 구조를 일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단계적으로 도시에서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동과 구 단위에서부터 생활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재사용·새활용 함으로써 순환경제의 삶을 경험하고 전환도시의 미래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도시의 절대적인 크기를 줄여야 한다. 도시 인구가 면적에 비해 너무 많아지면 주택과 교통, 학교와 직장 등 모든 부분에서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시 안에 녹색지대가 줄어들고 대기가 정체되어 미세먼지 공해를 피하기 어렵다.
영국과 미국 일부 지역에서 실험한 바와 같이 5만~10만 명 정도 인구가 배후에 숲과 농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규모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그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을주민들을 위한 공방을 구축하고, 폐기물활용 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을 공유자산으로 지원한다면 도시에서의 삶의 전환도 가능하다.
멈추지 않는 물질소비의 욕망을 자제하고, 하나 밖에 없는 지구 자원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