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대기자의 화판(化板)-28] 섬유 미들스트림이 무너지고 있다
섬유 미들스트림, 고난의 계절 중간허리 무너지면 미래 없어, 단체 중심으로 구심점 마련하고 정부는 제대로된 처방으로 전략적 리쇼어링 방안 제시 필요
패션의 완성인 의류제품은 완성되기까지 많은 단계를 거친다. 원사, 제직/제편, 원단, 디자인/봉제를 거치며 비로소 패션의 일부분이 된다. 업스트림에 속해 있는 원사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주로 대기업군에 있고 다운스트림에 속해 있는 패션산업은 수많은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반면 제직/제편, 원단업체들이 주를 이루는 미들스트림은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고 생사 기로에 서있다. 대구 섬유기업은 코로나 이후 수출 오더가 막혀 국내 오더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지만 이 또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경기북부 환편산업은 작년 한해만 수십여 곳이 폐업할 정도로 심각하다.
주로 임가공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형벤더나 봉제기업들이 해외에서 편직, 염색, 가공을 수직계열화해서 생산하는한 국산자재 납품은 요원하다. 문제는 대구나 경기북부 기업은 대부분 중소 규모라 업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심점이 약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대안은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같은 60여개에 이르는 섬유패션단체나 연구소들이 존재감을 가지고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다. 더불어 업계는 현재의 관련단체장과 지역협회 기관장을 지냈던 업체 중심으로 구심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 섬유패션 단체에서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있도록 단체장들의 적극적인 행보와 존재감이 필요하고 업계와의 소통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때다.
정부는 리쇼어링 관련 정책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업이 해외로 진출했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독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건비가 싼 해외 생산이 지속된다면 국내 미들스트림은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고비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옮겼던 회사에 메리트를 주고 되돌려 놔야 한다.
기업생존에 공명심과 애국심만으로는 명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경쟁력을 갖추는 것 또한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지만 스트림간 협업을 통한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일도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
직간접 종사 인원까지 포함하면 100만명에 이르는 업계 종사자의 생존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근간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에서 국내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대적으로 추진된 바 있다.
ESG 경영이 화두인데 평가항목에 국내생산 여부까지 포함시킨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경쟁력 때문에 해외에서 생산하지만 국내의 고용창출도 중요한 평가요소가 돼야 한다. 기업 생사에 중요한 것이 이윤인데 이런 식의 얘기는 애국심만으론 어려운 순진한 발상이란 얘기가 흔히 들린다.
아무런 메리트 없이 국내 생산만을 강요할 순 없다. 기업의 중요 가치인 이윤창출에 적절한 보상을 주면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 돼야한다.
정부(환경부·국방부·경찰청)와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중심이 된 ‘재활용 섬유제품 사용 확대’ 라는 의미 있는 행사가 최근 열렸다. 재활용제품을 선도구매해 관련시장을 확대한다는 서약식이다.
정부는 앞으로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재활용제품 구매를 의무화해 공공수요를 확대한다. 국방섬유 국산화도 올해부터 전투복을 필두로 시범사업이 진행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차근차근 순기능 모멘텀을 만들어 가야한다. 늦어질수록 산업계 피해는 더 커진다.
어떤 조직이든 중간계층이 허약하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화섬산업에서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쪽이 미들스트림이다. 단체장들이 총대를 메고 돌파구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더 큰 난관에 봉착할 게 뻔하다. 우는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다.
대통령이 안되면 총리, 주무부처를 면담해서라도 정책적 지원을 끌어내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필요하고 그만한 용기를 업계는 갈망한다. 미들스트림이 무너지면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