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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26)] “패션은 결코 화석화될 수 없고, 향수에 안주할 수 없다”

伊 패션의 아버지 ‘베뻬 모데네제’ 별세 제1대 이탈리아 패션협회장 역임

2020-12-10     편집부

이탈리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패션산업은 1970년대부터 유산처럼 간직해 오던 타이틀인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를 내세우며 국제적인 힘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탈리아인들에게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과 의구심이 공존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패션협회

이는 이탈리안 퀄리티에 대한 절대적 확신감을 잃게 만드는 크고 작은 불신이 확산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탈리아 패션협회 1대 회장이 지난 11월 별세했다. 베뻬(Beppe)로 불리던 주세빼 모데네제(Giuseppe Modenese, 1929~2020) 명예회장은 이탈리아 북부지역인 피에몬떼주의 알바 출신으로 청년기 이후 패션에 관련된 일을 하며 밀라노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로베르토 카푸치(Roberto Cpucci), 에밀리오 푸치(Emilio Pucci) 등 로마의 오트쿠튀르 브랜드의 쇼나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로 패션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오랫동안 로마의 라우라 비아지오띠(Laura Biagiotti) 등 무수한 브랜드의 쇼와 홍보를 담당해 오던 그는 1968년 모다 파르마(Moda Parme)라는 패션 박람회를 시작으로 해당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베뻬

이렇게 그는 이탈리아 특히 밀라노의 패션 시스템 구축에 크게 기여한 인물 중 하나로 각인됐다. 당시 이탈리아 패션계는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며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 크리지아(Krizia), 쟝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 등 재능 많은 신진 디자이너들로 넘쳐났다.

이들 덕분에 이탈리아는 세계적 패션국이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특히 밀라노는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도시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소위 잘 나가고 개성이 강한 디자이너들을 밀라노의 한 곳에 모이게 한 사람이 바로 베뻬 모데네제였던 것이다.

베뻬

그는 어렵게 19개의 브랜드를 소개하는 첫번째 패션 주간을 1979년 10월 3일부터 사흘간 주최하기에 이른다. 당시 이 행사는 이후 밀라노의 ‘카메라 나찌오날레 델라 모다 이탈리아나(CNMI, 이후 이탈리아 패션협회)’가 주관하는 여성복과 남성복 패션위크인 밀라노 돈나(Milano Donna)와 밀라노 워모(Milano Uomo), 그리고 주로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소개하는 로마의 알타로마(Altaroma)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모든 패션 주간의 시작점이 됐다.

베뻬 모데네제는 패션협회 현역 회장직을 은퇴한 후에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모든 패션소에 참석해 쇼를 관람하고 디자이너들을 격려했다. 특히 그는 회색 계열의 수제로 테일러드 된 댄디룩을 즐겨 입었는데 항상 신고 다니던 빨강색 양말이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로 아주 유명했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2년 보그 이탈리아와 로마의 알타모다가 주최하는 신진브랜드 콘테스트인 ‘후 이즈 온 넥스트(Who is on Next)’에서였다.

1990년대

백스테이지에 찾아온 그는 호기심과 질문이 아주 많은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후 패션쇼마다 볼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을 코로나 사태 이후 또다시 진행될 각종 패션 이벤트에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이탈리아 패션협회(CNMI)는 국내에서 열리는 패션위크 외, 패션에 관련되는 모든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홍보하는 비영리협회다.

1950년대 초 로마의 오트쿠튀르 종사자들과 디자이너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출범한 것을 계기로 1958년부터 패션협회로 확장된 것이다. 현재는 전 여성복 브랜드 코스튬 나찌오날(Costume National)의 대표이사였던 카를로 카파자가 회장직을 맡아 이탈리아 국내외 200여 업체를 대변하고 있다.

그외 신진 디자이너들을 도와줄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과 해외 패션협회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0년 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패션협회도 큰 변화에 빠른 속도로 적응해야 했다.

현재 많은 온라인 쇼나 프레젠테이션이 기존의 패션쇼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트렌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어느 정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패션은 결코 화석화될 수 없고, 명예만을 좇을 수 없으며 향수에 안주할 수 없다.’ 베뻬 모데네제는 이렇게 패션을 정의했다.

이처럼 패션에 관련된 모든 것이 항상 움직이고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패션만이 아닌 패션을 담을 수 있는 시스템마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요즘 큰 어려움에 직면한 우리에게 패션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알려주는 것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