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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정의 밀라노 스토리 (17)] 유네스코 문화유산 ‘크레스피 다다 근로자 마을’ 아세요?

1870년대 시작돼 공장과 근로자들이 주거할 수 있는 완성된 시설 갖춰

2020-08-07     편집부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8월 중 적어도 2~3주의 여름 휴식기에 돌입하게 된다. 모든 산업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직물, 의류 업체들도 협력업체들의 일시적 휴업이나 줄어든 작업량으로 인해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8월 휴가를 결정한 것이다.

다른 해와 차이점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외국보다는 이탈리아 국내 여행을 휴가지로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휴가 중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나쳤던 지역사회의 숨겨진 문화유산을 방문하는 것도 중요한 스케줄 중의 하나다.

크레스피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중요한 종교관련 문화유산부터 지역 토박이들만 알 수 있는 헤리티지가 살아 숨쉬는 곳까지 그 영역은 끝없이 다양하다. 롬바르디아주에서 만든 지역 문화유산 리스트에는 박물관 및 지역사회에서 보존되고 있는 공공 혹은 사유의 유, 무형 문화를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술적 문화유산 및 현대 건축, 고고학적 발견품목, 과학기술과 의료 유산, 각종 수집품 및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롬바르디아주는 폰다찌오네 루이지 미켈레띠와 협업으로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주내의 산업시설 고고학 리스트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롬바르디아주의 역사적 산업기념물’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한 바 있다.

공장입구

폰다찌오네 루이지 미켈레띠는 1800년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유산인 지역 헤리티지 수집과 커뮤니케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센터다. 이 곳은 주로 롬바르디아주에서 일어난 지역사회의 환경, 역사, 경재분야 변화를 수집한 뒤 문서로 남겨놓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의 지역 민족문화연구소와 비슷한 곳으로 볼 수 있다.

지역 산업 헤리티지를 찾는 연구조사는 실크, 철, 시멘트, 종이, 양모, 면화, 린넨, 전기 생산과 같은 잘 알려진 지역에 집중되어 업종별로 나뉘어 진행됐다. 그 중 패션, 의류 산업이 발달한 롬바르디아의 특성상 각 지역에 위치한 직물 관련 산업에서 전해진 문화유산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1800년대 말부터 이어진 이탈리아 직물산업의 부흥으로 인해 모, 면, 실크직물 생산업이 크게 발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강타한 유가 폭등이 있었던 1970년대 초를 지나며 수많은 대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하게 됐다.

관부

특히 면직물 관련 산업의 경우 베르가모 인근에서 크게 발전하던 것이 지금은 밀라노 서쪽 도시인 갈라라떼 인근에서 소규모로 유지되고 있다. 베르가모 인근의 기업들 중에는 폐쇄 이후 부지와 건물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지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은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 크레스피 다다(Crespi D’ Adda)는 1995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보기 드문 산업 문화유산 중 하나다. 이 곳은 지금 ‘크레스피 다다 근로자 마을(Villaggio operaio di Crespi D’ Adda)’로 불리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단순히 일하는 장소인 회사나 공장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인근에 위치한 근로자의 거주지까지 포함한 마을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드문 경우다.

학교

크레스피 근로자 마을은 인근 아다(Adda) 강의 수력 에너지를 이용하기 편리한 위치에 자리잡았다. 마을 설계는 1870년대에 시작해 1920년대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며 보통 마을로 완성됐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설계 스타일로 공장 옆에 근로자와 가족들이 주거할 수 있는 완성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마을 입구를 기준으로 공장은 우측 그리고 주거시설은 중앙의 길을 건너 좌측에 자리잡고 있다. 모든 주거시설은 일률적으로 한가족이나 두 가족이 살 수 있는 복층집을 둘러싼 작은 정원 그리고 텃밭까지 갖췄다. 또 학교, 작은 병원, 극장, 소방서, 스포츠 센터 그리고 마을 끝에는 묘지까지 위치하고 있다.

간부급 인사들의 주택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낮은 언덕위에 있어 그들의 신분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과 공장 어귀에는 각각 성당과 크레스피 가문 소유의 성이 있어 모든 것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반면 공장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네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방적, 염색, 제직, 가공 등 4단계 공정을 나눠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크레스피

계층과 필요조건을 모두 고려해 사전 설계된 이 마을은 한 근로자의 일과 여가, 프라이버시를 포함한 모든 일상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것이다. 21세기 관점에서는 다소 부정적 시선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잘 보존된 마을 전체의 미학적 관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코토니피초 크레스피(Cotonificio Crespi)는 1970년대 초부터 몇몇 건물을 다른 개인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3년 공장의 모든 생산활동이 종료됐고 2013년 기업가 안토니오 페르카씨에 의해 개인 사용을 목적으로 인수됐다.

현대화 속에 존재했던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헤리티지를 방문할 때마다 많은 생각이 밀려온다. 무수한 업체가 세계 관련 산업의 체제 변화로 인해 명성을 잃고 그 형태와 쓰임새가 바뀌어 온 사이 몇몇 기업의 10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인상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지역 문화유산의 개념은 역사속 중요한 한 장면은 아니지만 평범한 우리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