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섭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장 - “나의 뿌리는 패션디자이너,티켓 파워 있는 흥행배우가 돼야 한다”
연예인과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공중파 TV를 탄다. 손대는 콜라보레이션 상품은 연일 대박을 치고 유력 일간지에는 고정 칼럼까지 기고한다. 간호섭(49)은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패션디자이너면서 대학교수(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다.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소위 가장 ‘핫’한 패션의 아이콘이다. 지난 4월에는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 13대 회장에 선출되며 또다른 타이틀 롤을 맡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간호섭은 어떤 사람인가.
“대학에서는 4과목 주 12시수를 강의한다. 강의 양으로만 따져도 적지 않다. 학부 4학년, 대학원 석·박사 논문을 지도하고 있다. 올해로 교수 생활 23년이 됐다. 젊은 나이에 일찍 교수를 하니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줄 안다. (웃음) 홈앤쇼핑 PB(Private Brand) ‘엘렌느(AILENE)’ ‘슬로우어반(SlowUrba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도 맡고 있다. 중심은 교직에 있지만 뿌리는 패션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하고 싶은 디자인도 하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TV를 보고 교수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는 성균관대 의상학과 90학번이다. 남들은 못 가 안달인 치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삼수까지 했다. 엄격한 교육자 집안에서 패션을 하겠다는 말은 운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니콜파리, DKNY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1997년 겨울,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러 한국에 들어왔다.
스물일곱 나이에 덜커덕 동덕여대 교수가 됐다. 행운은 아니다. 신선한 감각의 젊은 피를 원했던 동덕여대 청담동 캠퍼스와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 일하던 디자이너 간호섭은 서로 궁합이 잘 맞았다. 2003년에는 홍익대 미술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업들이 선호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유인(誘引)은?
“상업적 협업은 책임감과 리스크가 크다. 기업에 매출을 일으켜 줘야 한다. 실력만으로는 안된다. 인지도를 쌓아야 하고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계약 조건에는 없지만 런칭 첫 방송에는 자진해서 화면에도 나간다. 그런 면에서 나는 배우다. 패션은 영화산업과 비슷하다. 브랜드는 (영화) 제작사, 유통기업은 롯데시네마, CGV 같은 배급사다. 흥행배우가 돼야 다음 작품이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평판(reputation)이 쌓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진다. 학생이나 처음 이 세계에 도전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말한다.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인내하며 시장을 배우고 성공해야 한다고. 처음에는 개성을 좀 줄이더라도 성공해야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브랜드를 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인 걸 안다.
예전과 달리 요즘 디자이너는 경영까지 알아야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 학교(홍익대)는 4학년 1학기에 (졸업작품)쇼를 끝내고 2학기에는 패션 매니지먼트를 가르친다. 대학원은 패션창업과정을 따로 두는 등 실전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속가능 하려면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라이프 잡지가 없어지고 코닥 필름이 사라졌다.”
간호섭은 작년 12월까지 루이까또즈에서 4년반을 CD로 일했다. 그 사이 이 회사는 매출 1800억원의 대형 핸드백 브랜드로 성장했다. 작년 10월에는 ‘자동차와 색’이라는 주제로 기아자동차와 협업했다. 패션과 자동차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콜라보다. 현재 CD를 맡고 있는 홈앤쇼핑 PB는 지난 3월 한달간 400억 매출을 올렸다. 비수기로 꼽히는 3월, 그것도 단가 낮은 니트 의류로.
-한국 브랜드는 국내 시장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제자들에게 글로벌 디자이너 또는 디렉터가 나올 때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대중 문화나 스포츠에서는 이미 그런 사례가 많이 나왔다. K팝의 BTS,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야구 스타를 보라. 영화는 어떤가. 경제적 뒷받침이 되고 문화적으로 성숙되면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기 쉬워진다. 박세리 키즈가 세계 골프무대를 누비게 된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 있다. 우리 업계에서도 조만간 스타 디자이너, 브랜드가 나올 것으로 본다.”
-선행 조건은?
“문화적으로 성숙한 선진국이 돼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를 따라하고 싶고, 우리 브랜드가 좋아 보이게 된다. 일본 음식문화를 자주 언급한다. 헐리우드 영화 보면 일본의 스시는 고급 문화로 대접받는다. 미국은 스테이크, 햄버거, 소시지의 나라다. 생선 스테이크도 생소한데 날 생선(raw fish)이라니. 예전에는 대한항공이 기내에서 김치를 내 놓는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지금은 비빔밥, 불고기가 나온다. 문화적으로 성숙됐다고 받아들이는 거다. 일본 스시와 사케는 한국의 비빔밥과 막걸리로 비유될 수 있다. 토요타와 소니가 있듯 현대와 삼성이 있다. 번영된 경제와 문화적 성숙이 뒷받침되면 브랜드가 인정받는다. 디자인 잘하고 퀼리티 좋다고 다 인정받는 게 아니다.”
-지난 4월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장이 됐다. 어떻게 이끌어 갈 계획인지.
“요즘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가 국내 3대 학회로 꼽힌다는 얘기를 듣는다. 학회는 학술단체다. 학교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부분을 재교육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학술활동과 산학협력을 강화할 생각이다. 우리가 돈을 벌어 줄 수는 없지만 (기업들에) 돈 버는 방법을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 기업들은 직원 재교육을 한다.
그렇다고 비싼 돈 들여 유명 강사 초청하려면 부담된다. 우리 학술발표와 강연을 듣고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는 실무적 비즈니스 능력을 배양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과 연계해 시대 변화에 맞는 재교육을 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고 싶다.”
기대 높은 스타 디자이너이자 교수로서 학회장 2년 임기가 짧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스트레스가 많은 자리다. 봉사는 2년이면 충분하다.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내가 할 때 잘했다는 평가받는 것 보다 그 다음에 잘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다. 나 있을 때 반짝 명예만 얻고 가면 무슨 소용인가. 기업 경제도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는 2주 일정으로 지난 19일 밀라노행 비행기를 탔다. 중간에 한국에서 일이 생기면 현지 일정 마저도 축소하고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