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시장, 1회용 비닐봉투 규제 대안이 없다
계도기간 끝나고 4월 1일부터 집중 단속 실시 상인들 “예외 기준 두거나 시장에 맞는 대체재 필요” 주장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1회용 비닐봉투 규제가 계속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동의한다. 그런데 정부가 권장하는 장바구니나 종이봉투 및 생분해비닐은 동대문 도매시장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전국으로 배송되는 상품을 찢어지기 쉬운 종이봉투에 넣을 수는 없고 생분해 비닐을 쓰자니 원가 부담이 크다. 지금 쓰는 비닐봉투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뭔가가 필요하다. 대안 없는 시행은 처벌하겠다는 것 밖에 안 된다.” (올레오W 상인)
“재활용봉투는 비닐봉투보다 가격이 2.5배~3배 높다. 옷 원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원가부담이 커진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고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물건을 사게 된다. 단속까지 협의가 더 필요하다. ” (혜양엘리시움 상인)
동대문 시장이 지금 쓰는 1회용 비닐봉투를 대신할 마땅한 포장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4월 1일(오늘)부터 1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 사업장을 대상으로 집중점검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1월 1일, 비닐봉투 사용억제를 위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하 재활용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3월말까지 현장 계도를 실시했다. 동대문 시장 상가들은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대규모 점포에 해당돼 비닐봉투 대신 재사용 종량제봉투나 장바구니, 종이봉투 등을 사용해야 한다. 단, 평화시장, 테크노상가 등 전통시장은 예외가 적용된다.
그러자 규제 대상이 된 대규모 점포 상가와 상인들은 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재활용법이 적어도 동대문 시장 내에서는 심각한 맹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핵심은 두가지다. 비닐봉투 사용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전통시장과 이를 금지하는 대규모점포는 영업방식, 취급품목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 사실상 구분이 필요 없는 동일 유통형태로 볼 수 있다.
이번 법 시행에 따라 통일상가, 신평화패션타운, 남평화시장, 제일평화 등 전통시장 11곳은 비닐봉투를 예전처럼 쓸 수 있지만 apM, ddp패션몰, 누죤, 혜양엘리시움 등 20개 대규모 점포는 종이봉투를 쓰거나 값이 비싼 생분해봉투를 사서 써야 한다. 이들 상가의 차이를 굳이 꼽자면 말 그대로 1960년대부터 있어온 전통상가와 90년대 들어서기 시작한 신흥상가 정도의 기준이 있을 뿐이다.
또 다른 맹점은 도매시장에서 쓰는 비닐봉투는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트나 소매 점포와는 차원이 다른 쓰임새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 수백 km를 가는 의류들을 꽁꽁 묶는 포장에 종이봉투는 아예 쓸 수 없고 생분해비닐을 쓰자니 비용 부담이 지나치다. 설령 돈을 들이더라도 찢어지기 쉬운 생분해비닐은 옷을 담는 포장재로 쓸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자 박중현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장은 지난 2월11일 환경부에 동대문 시장 내 대규모 점포에 대한 ‘1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 유예’를 요청하며 국민신문고를 두드렸다. 그는 동대문 도매시장의 대규모점포에 한해 1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 유예를 요청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에 대해 법률개정안 내용을 언급하는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내놓았다.
박 회장은 “소매를 주로 하는 대규모점포는 일회용 비닐용품 사용을 제한해도 쇼핑백 등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apM플레이스, 혜양엘리시움 등 도매를 하는 대규모 점포는 비닐봉투를 대신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매시장은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못하면 종이박스를 사용해야 한다”며 “박스는 찢어지기 쉽고 비와 눈 등에 의해 의류 이염 및 오염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매장 상인이나 각 대규모 점포 관계자들은 “도매 장사하는 입장에서 비닐봉투를 대체할 게 없어 고민이 깊다”며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올레오W에서 도매를 하는 한 상인은 “사입 삼촌이나 도매업자가 여러 매장을 돌며 물건을 사면 무거워지고 부피가 커져 비닐봉투를 던지거나 질질 끈다”며 “일회용 비닐봉투를 쓰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동대문시장 큰손으로 자리잡은 중국 바이어들 물건은 운송 및 보관이 훨씬 더 까다롭다. apM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비플랜(BPLAN) 대표는 “동대문 시장에서는 A4 종이 사이즈 보다 조금 큰 1~3호 봉투를 많이 사용한다”며 “국내 내수 고객(소매업자)에게는 작은 종이봉투(1~3호봉)를 사용할 수 있지만 중국 손님에게는 이 봉투를 쓸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손님이 전화나 인터넷 또는 중간 에이전시를 통해 물건(옷)을 주문하면 일주일이나 열흘 걸려 바다를 건너고 중국으로 들어간다. 만약 얇은 생분해재생비닐에 물건을 담으면 봉투가 찢기거나 분실되고 때가 타 오염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apM플레이스 김정현 본부장은 “비닐봉투에 담긴 물건 90% 이상이 중국으로 간다”며 “수출할 옷을 종이 봉투에 넣는다면 습기에 노출돼 옷이 이염되거나 봉투가 파쇄될 확률이 높다. 비닐 봉투당 10~20kg이상 들어가는 것도 많은데 이를 버틸 생분해비닐봉투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동대문 시장 도매상가 관계자는 “법 테두리 안에서는 종이봉투 바깥에 테이프를 둘러 쓰는 방법 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 일하는 노동력과 시간, 비용은 물론이고 그만큼 테이프를 또 쓰게 돼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규제를 위한 규제”라고 대안을 촉구했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동대문 시장 내 하나의 도소매 점포가 하루에 30~100장의 비닐 봉투를 사용한다. 그런데 생분해비닐은 재질이 얇아 에이전시와 물류센터 등을 거치는 도매 유통 시스템을 견디기에는 내구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가을 겨울에 가장 많이 쓰는 대봉투(7~8호) 사이즈는 있지도 않다. 가격은 비닐봉투보다 2.5~3배(2~3호 봉투 기준) 비싸다.
박 회장은 “정부는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1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에 대한 유예 기간을 더 주거나 시장 지원 차원에서 필요한 사이즈별 재생비닐봉투 값 지원이 필요하다”며 관계기관이 현장을 방문해 함께 대안을 찾아주기를 바랐다.동대문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부지원이나 유예기간을 더 줄 수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이균혁 주무관은 “동대문 내 의류, 원단 및 부자재를 50리터 비닐봉투에 담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량을 담는 비닐봉투에 대해서는 이미 3개월 유예기간을 두고 재고 소진 기간이 있었다”며 “그 외 정부지원 등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제한적이고 애매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