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스로틀컨셉 이상민 대표 - 글로벌 스포츠브랜드가 일하고 싶어하는 1순위 디자이너

아디다스, 푸마, 언더아머 등에서 매번 넘버원 신발 디자인 미국 독일 유학 거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서 명성 얻어 기존 제품을 보완하고 새로운 제품을 제시해 소비자 만족시켜야

2019-01-18     정정숙 기자

이상민(48) 풀스로틀컨셉(FULL THROTTLE CONCEPTS) 대표는 트렌드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언더 아머(Under Armour), 푸마(Puma), 아디다스(Adidas) 등 25개 브랜드와 컨설팅 디자이너로(콜라보레이션) 소비자 합격점을 받았다. 주로 이상민 대표가 외주 CD(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참여해 디자인한 신발로 언더 아머는 3년 동안 매 시즌 20%가 넘는 판매성장률을 달성했다. 2010년에는 컨설팅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언더 아머가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Designer of the Year)로 선정됐다.

“회사 내부 디자이너가 아니었지만 매시즌 출시하는 신발마다 판매량이 높았다. 지금도 가장 많이 팔린 넘버원 신발로 불리고 있다. 이에 외부 디자이너에게 올해 디자이너 상을 줬다.” 현재도 미국 포트랜드에서 멀티 디스플리너리(multi-displinary)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로 외주 CD로 활약 중이다. 거래처는 미국, 캐나다, 유럽 브랜드가 가장 많다. 한국에서는 골프화 스니커즈 등 캐주얼 신발 사업을 시작한 ‘까스텔바작 슈즈’팀과 2020년 신상품 출시를 앞두고 디자인 기획 중이다.

이 대표는 “해외 브랜드 경험을 토대로 한국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앞으로 더 많은 브랜드와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향후 자체 브랜드를 런칭해 소비자 접점을 높일 예정이다. 안전화, 낚시화, 패션화 등 카테고리에 국한되지 않는 디자인으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국내서 고등학교 졸업 후 19살에 두 형을 따라 미국행에 올랐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College of Architecture)에서 산업 디자인(Industrial Design)을 전공했다. 재학 중 미국 산업디자인협회에서 주는 최우수 ‘Merit Award’ 수상했다. 재학 중 퀼른(Koln)공대에 발탁돼 3학년을 독일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북미 유명 브랜드 료비(Ryobi), 선드벅 페라 등에 매번 스카우트됐다. 전자제품, 파워툴(Powertool), 어플라이언스(Appliance) 등을 디자인, 개발, 엔지니어링을 하며 히트상품을 디자인했다.

“어릴 때 부터 만들고 발명하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역량 있고,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과 경쟁하며 배우고 나 자신 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패션 디자이너로 활약은 20여년 전 아디다스에 스카우트되면서 시작됐다.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의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던 중 산업 디자인에서 다양한 경험을 갖춘 디자이너를 찾던 아디다스에 들어가게 된다.

■ 아이다스, 한국디자이너로 명성
아디다스에서는 기능성 위주의 아웃도어 카테고리에서 시작해 러닝화, 야구화, 미식 축구화 등 아디다스오리지널 헤리티지 제품을 디자인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 당시만 해도 유명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 한국 디자이너가 없었다. 마케팅, 개발팀, 샘플팀으로 부터 가장 같이 일하기 쉽고, 일하고 싶은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았다. 아디다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첫 미국 디자이너로 기반을 다졌다.

그는 “보통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은 30~40%가 출시된다”며 “아디다스 당시 4여년 동안 디자인 한 거의 대부분 제품이 출시됐다”고 말했다. “산업 디자인과 기계·설계 등의 전 경험을 토대로 가장 테크니컬하고, 난위도 높은 풋웨어 프로젝트를 소화했다. 닉네임이 에스맨 곧 슈퍼맨(Sman = SuperMan)으로 불렸다.”

■ 푸마서 스포츠 라이프스타일로 전성기
그는 푸마에서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크리에티브 디렉터로 활약했다. 아웃도어, 야구신발팀 등에서 이머징 스포츠(Emerging)부문을 이끌며 트렌드를 리드했다. 푸마는 당시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컨셉을 창출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의 푸마 전성기에 핵심 역할을 맡았다. 자니 데이먼(Johnny Damon), 제이 린드버그(J.Lindberg) 등 유명 운동선수들과 패션 파워하우스와 콜라보레이션하며 푸마 전성기를 만들었다. 당시 한 시즌에 컬러당 100만족을 팔았다. 한 디자인 제품을 400~500만족을 생산했을 때다.

“기본 디자인 뿐만 아니라 자재와 어떻게 완벽하게 배치시키느냐에 신경을 썼다. 특히 개발과 마케팅팀과도 얘기를 많이 했다. 디자인을 날렵하게 하기 위해 개발 지식도 높였다.” 그는 ‘자재팀이 개발 쪽에 신경을 써느냐’며 ‘영역 침범을 하지 말아달라’는 충고를 들었다. 푸마에서는 퍼포먼스와 스포츠라이프스타일 패션신발을 많이 디자인했다. 태권도, 복싱 등과 접목한 신발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는 푸마에서 2년 6개월 후 컬럼비아 몬트레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시절 한 교수가 ‘산업디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고 ‘산업디자인은 그림과 무대를 만드는 툴로서 문제를 푸는 것이다’는 말을 했다” 그는 지금도 교수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20여년 넘게 기본을 중시하며 디자인한다”며 “디자이너는 기존 제품을 보완하고 새로운 것을 제시해 소비자에게 만족을 줘야한다. 소비자 니즈에 맞게 문제를 푸는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