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홍미화, 아프리카 순회 패션쇼 - “패션의 궁극은 ‘어우러짐’ 지구촌 모두가 주인공”
멀고 먼 나라 ‘패션쇼 교류’로 이웃처럼 가깝게
디자이너 홍미화가 아프리카 순회 패션쇼를 다녀왔다. 느린 문화권, 아직은 흙을 밟고 사는 머나먼 나라의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패션’으로 소통하고 공감과 사랑을 나눴다. 홍미화 디자이너는 수년전 지진으로 고통받은 네팔에서도 패션쇼를 열어 그들을 위로했다.
파리 벤센느 숲에서 반딧불을 풀어놓고 여름밤의 패션쇼를 열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해외에서 이름을 알렸던 디자이너 홍미화. 그녀는 이제 자연과 사람, 신앙과 사랑, 패션의 아름다움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패션 선지자’로 경계를 초월한 삶을 살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귀국한 홍미화 디자이너의 기고를 통해 현장의 생생함과 감동을 공유하고자 한다.
기고=홍미화
정리=이영희 기자 yhlee@adj360.com
응원해 주신 사랑에 힘입어 아프리카 남아공의 옴푸말랑카, 케이프타운, 가나의 쿠마시를 순회하는 패션쇼 일정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오래전 저는 첫 파리 컬렉션에서 이 같은 메시지를 남긴 바 있습니다.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편히 쉬세요. 국적, 인종, 신분, 연령, 성분 모두 버리고 한 여름밤 벤센느의 숲속으로 오세요. 그리고 달빛과 별빛과 반딧불과 함께 우리 모두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라구요.
아프리카에서 순회 패션쇼를 하면서 마치 제가 첫 파리컬렉션 때 가졌던 마음, 환경,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아프리카 첫 번째 패션쇼는 남아공 옴푸말랑카에서 였습니다. 공항에서 8시간 깜깜한 밤길을 구불구불 몇 개의 산을 넘어 도착했고 아침에 눈 앞에 펼쳐진 경치는 밤새 목숨을 걸고 달려온 보람을 느끼게 할 만큼 에덴동산 같았습니다.
주민들 중에 모델을 뽑아 피팅하고 준비하는데 3일이 걸렸고 난생 처음의 패션쇼임에도 마을 사람들이 가득모여 날마다의 축제인양 하나가 돼 흥겨워했습니다. 누가 디자이너이고 누가 모델이고 누가 관객인지 모를 만큼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축제였습니다.
두 번째 패션쇼는 케이프타운. 같은 남아공이지만 자동차와 비행기로 또 다시 10시간은 간 것 같습니다. 부자나라이지만 케이프타운 이곳은 빈부의 차이가 아주 심한 곳으로 우리가 도착한 게스트 하우스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패션쇼를 하는 장소는 숙소에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완전 빈민 마을이었고 누더기 양철집들만 있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하신 분은 NGO단체로 활동하시는 분인데 위험지역이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친밀감을 느꼈으며 모델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지요. 할 수 없어 많이 뽑은 다음 아이디어를 짜냈고 결국 쇼 마지막 휘날레에 아이들을 모두 세우고 남아공 애국가를 합창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신나게 잘 부르던지요.
다음은 가나의 쿠마시 실로암 스쿨 패션쇼를 위해 이동했습니다. 국내선 항공 3시간, 국제선 항공 5시간, 자동차 8시간으로 긴긴 여정이었습니다. 앞서 두곳보다 패션쇼를 진행하기에 좋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가나의 거리 자동차들은 폐차직전 모습으로 도로를 달릴 만큼 낙후됐고 우리가 탄 스쿨버스 마저 도중에 고장이 나 아슬아슬한 여정 끝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모델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모두를 세웠습니다. 여기서도 합창단을 만들어 가나의 애국가를 부르게 했습니다. 수 많은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더 무대에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델들이 신체조건도 프로 못지않아 이랜드의 콜라보 의상들도 아주 잘 소화하고 홍미화의 빈티지 의상도 프로모델 못지않게 멋지게 소화해 냈습니다.
패션쇼의 구색이 잘 갖추어진 환경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리허설 때 오히려 춤추고 소리치고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패션쇼라는 것을 처음 본 사람들의 흥분된 모습들, 학교 근처 동네길에서 미싱을 놓고 옷을 만들고 수선해주는 여성에게 “당신은 멋진 디자이너다. 최고다!” 라고 했더니 얼마나 활짝 웃으로 좋아하던지 눈에 선합니다.
패션의 궁극은 어우러짐이라 생각합니다. 과거 몇몇 나라가 패션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던 시대에서 조금씩 이탈해 이제는 공존하는 지구촌의 모든 이들이, 모든 나라가, 패션의 주인공이 된 듯합니다. 패션쇼 옷들과 선물용 티셔츠도 거의 다 나눠 주고 피난민 같은 이민가방 6개가 홀쭉해져 돌아왔습니다. 더 많이 주고 싶은데 혹 못입는 옷이라도 있으면 달라고 해서 다음에 가져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는 지구촌이라는 이 다정한 말이 보이는 형태에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시대라고 말하기 충분하게 느껴집니다. 임박한 포스트휴먼시대 도래와 지구촌 환경보호운동, 자연주의가 공존되는 이 어우러짐은 생활전반에 이루어져 있는 지구촌 축제가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문화적교류, 내면의 영혼의 사랑을 나누는 공존의 미학, 이 것이 곧 휴먼사랑이 아닐까요. 느린 문화권의 소중함을 더 알고 아마존 수풀의 존재에 대해 더 없이 귀하게 고맙게 느끼며 아직도 흙을 밟고 사는 나라와 민족들이 많음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패션이 예술이라기 보다 또 두드러지는 표출이라기 보다 어우러짐의 미학으로 문화와 생활전반에 묻힐 때, 서로가 서로를 더욱 멋져 보이게 하는 최고의 패션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